부산시, ‘한국판 홀로코스트’ 공식 조사 결과 나와
전문가 6명, 피해자 21명 40일간 심층 인터뷰
“당시 글을 쓸 수 있었다면 억울하게 생매장 당한 사람들의 위치 등을 적어 남겨놓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한스럽습니다.”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첫 공식조사 결과가 나왔다. 피해자 21명에 대해 전문가 6명이 40일간 심층 인터뷰한 부산시의 ‘형제복지원 피해자 실태조사 연구용역’이 지난 24일 부산시의회의 최종 보고회를 거쳐 공식적인 공개를 앞두고 있다.
27일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살인, 암매장 등이 자행됐던 형제복지원을 죽음의 공포가 가득한 곳으로 기억했다. 그들은 끔찍한 학대의 충격을 트라우마로 안고 현재의 삶을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
부산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끌려가 3년간 수용생활을 한 실태조사 참여자 A씨는 자신이 갑자기 행방불명되면서 어머니는 실성하고 아버지는 폐인이 돼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고 회상했다. 그는 실태조사에서 “몇 명을 산에 묻었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방에 묻고 그 위에 시멘트와 흙으로 덮었다”고 진술했다.
돈을 벌러 부산에 왔다 형제복지원 단속반에 걸려 끌려갔다는 B씨는 “때리다가 죽으면 가마에 똘똘 말아 창고에 차곡차곡 둔 모습을 봤다”며 “나도 저렇게 되는 게 아닌가 두려웠다”고 말했다. C씨는 “나의 손으로 생매장을 했던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성 학대의 잔혹함에 치를 떨었고, 동성에 의한 성 학대를 겪기도 했다. D씨는 “지금도 누가 뒤에서 덮칠까 봐 방문을 바라보며 잔다”면서 “잠을 잘 때도 TV를 켜놔야 하고, 어두우면 잠을 못 잔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부산역에서 오빠를 기다리다 끌려간 E씨는 형제복지원에서 성폭행을 당해 아이까지 출산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양이 돼버렸다고 전했다.
면접 참여자 F씨는 퇴소 후 극단적인 시도를 몇 차례나 했다고 한다. 이번 조사에서 퇴소 후에도 후유증에 1회 이상 극단적인 시도를 한 피해자는 전체의 절반을 넘는 51.7%에 달했다. 상당수 피해자들은 “나 자신을 잃었다고 생각한다”거나, “내가 깨져버렸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이번 용역은 동아대 산학협력단 남찬섭 교수가 책임을 맡아 지난해 7월 시작했으며, 피해자 149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와 이들 중 피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21명을 상대로는 심층 면접이 이뤄졌다.
이번에 조사한 피해자 149명 중 시설 입소 당시 15세 이하가 74.5%로 가장 많았다. 또 10명 중 8명(79.7%)은 납치 또는 강제연행으로 수용됐다. 성추행(38.3%), 강간(24.8%) 등 성 학대가 빈번했고, 자상(67.2%)을 비롯해 평균 4.7곳의 신체 부위를 다쳤다. 수용 기간 시설 내에서 사망자를 보거나 직접 들은 경험은 83.2%에 달했고, 3.4%는 사망자 처리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고 답했다.
지난해 ‘부산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명예회복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대표 발의한 박민성 부산시의원은 “이번 조사에서 형제복지원에서 시신을 해부용으로 거래했을 가능성이 있는 자료도 확보할 수 있었다”며 “피해자 진술과 각종 자료를 토대로 형제복지원 진상을 밝히는 과거사법을 제정하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부산=목상균 기자 sgmok@hankooki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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