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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핀 꽃, 마지막에 지다

입력
2020.04.27 16:23
수정
2020.04.27 17:2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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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에 은퇴 이효희 “덤으로 누린 행복, 이젠 후배들에게 베풀게요”

4개 팀에서 모두 우승컵을 들었던 세터 이효희. 왼쪽부터 우승년도였던 2005년(KT&G), 2009년(흥국생명) 2013년(기업은행), 2018년(도로공사) 이효희의 모습. KOVO 제공.
4개 팀에서 모두 우승컵을 들었던 세터 이효희. 왼쪽부터 우승년도였던 2005년(KT&G), 2009년(흥국생명) 2013년(기업은행), 2018년(도로공사) 이효희의 모습. KOVO 제공.

“개인 기록도 우승의 기쁨도 이젠 다 내려놓고 떠납니다.”

가장 늦게 꽃을 피웠지만 누구보다 오래 배구 코트를 누렸던 ‘대기만성 레전드 세터’ 이효희(40ㆍ한국도로공사)가 실업ㆍ프로리그 22년 선수 생활을 뒤로 한 채 은퇴를 선언했다.

이효희는 27일 본보 전화통화에서 “은퇴 결정까지 미련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박)정아가 ‘언니는 50살까지 배구할 줄 알았다’며 아쉬워했다”면서 웃었다. 그러면서 “남들 같으면 이미 은퇴를 했어도 몇 번을 했을 나이다. 진작에 했을 은퇴인데 그 동안 덤으로 행복을 누렸다고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도로공사는 오는 2020~21시즌 초반 이효희 은퇴식을 열 계획이다.

1998년 실업리그 KT&G에 입단한 후 22년 21시즌을 배구 코트에서 보냈다. 역대통산 세트성공 1위(1만7,105개ㆍ포스트시즌 포함)도 그의 기록이다. 2위 김사니(1만4,250개)가 은퇴했고 3위 염혜선(1만1,334개)은 아직 기록 차가 있어 이 기록은 한동안 깨지기 힘들다. 역대 통산 디그 성공 부문에도 4위(5,001개)에 올라 있다. 1~3위(김해란, 임명옥, 남지연)가 모두 전문 리베로 출신인 점을 고려하면 흥미롭다. 그는 “디그 기록은 모르고 있었다. 키가 작아 수비라도 열심히 해 팀에 보탬이 되자는 생각이었는데 내가 4위라니”라며 웃었다.

특히 그가 몸담았던 4개 팀(2005년 KT&G, 2009년 흥국생명, 2013년 기업은행, 2018년 도로공사)에 모두 우승컵을 안긴 자타공인 ‘우승 청부사’였다. 2013~14, 2014~15시즌엔 2년 연속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다. V리그 여자부에서 세터가 정규리그 MVP에 오른 건 이효희 뿐이다. 그는 “고비 때마다 좋은 지도자, 좋은 공격수, 좋은 리베로를 만났다. 난 정말 운이 좋은 세터다”라고 말했다.

은퇴 선언한 도로공사 세터 이효희. KOVO 제공.
은퇴 선언한 도로공사 세터 이효희. KOVO 제공.

긴 시간 우여곡절도 많았다. 1980년생인 이효희는 동갑내기 이숙자 KBSN해설위원, 한 살 어린 김사니 SBS스포츠해설위원과 ‘세터 트로이카’ 체제를 이루며 대한민국 세터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가장 늦은 2005년에야 팀에서 주전이 됐고 국가대표 발탁도 가장 늦었다. 이효희는 “또래 선수 중 유독 좋은 세터들이 많았다. 입단 초기에는 뒤에서 기다리는(백업) 시간이 더 길었다”면서 “가장 잘한 세터는 아니었지만 가장 오래 선수 생활을 했기에 불만은 없다. 오히려 감사하다”며 웃었다.

2010년에는 선수 생활 위기를 맞았다. FA계약에 실패하면서 2010~11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이 기간 실업팀 지명을 기다리며 일반인 생활체육 배구 동호회에서 운동했다고 한다. 그는 “오라는 팀은 없었지만 언젠가는 다시 배구를 할 것이라는 생각에 배구공을 놓지 않았다”면서 “만일 이때 포기했다면 지금의 이효희는 없었을 것”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호랑이 감독’ 이정철 전 기업은행 감독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 시기다. 2011~12시즌을 앞두고 이 감독이 이효희에게 손을 내밀었고 이효희는 팀 우승(2013)으로 화답했다. 이효희는 “은퇴 결정 후 가장 먼저 이정철 감독께 전화 드려 감독님 덕에 10년을 더 뛰었다고 감사의 말씀을 드렸다”면서 “박수 받을 때 은퇴하는 것도 멋진 모습이라고 덕담해 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22년 만에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는 중이라고 했다. 내달 3일 팀에 휴가 복귀할 예정인데 이후 지도자 수업 등 소속 팀과 향후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효희는 “‘잘하면 공격수 덕, 못하면 세터 탓’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세터들의 이런 마음을 잘 헤아리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강주형 기자 cubie@hanb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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