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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공간 사람] 둥근 듯 날카로운…30대 부부의 평창동 집

입력
2020.04.29 04:30
수정
2020.04.29 10:3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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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경사지에 들어선 30대 부부의 흰 벽돌집은 가로변 입면에서 보면 견고하면서도 묵직한 느낌이 든다. 움푹 팬 듯한 창과 테라스가 외벽에 해방감을 준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경사지에 들어선 30대 부부의 흰 벽돌집은 가로변 입면에서 보면 견고하면서도 묵직한 느낌이 든다. 움푹 팬 듯한 창과 테라스가 외벽에 해방감을 준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서울 종로구 평창동은 흔히 ‘어른들의 동네’라 불린다. 북한산 아래로 전망이 좋고, 도심과 떨어져 있어 한적하고, 자연경관지구로 지정돼 있어 개발이 제한적이다. 이곳에 2세, 4세 두 아이를 키우는 30대 부부가 1년여 전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부부는 “저희는 아이가 있고 가족이 많을 때 넓은 곳에 살고 나이가 들수록 집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아이와 함께 풍요로운 공간에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직장 때문에 서울에 집을 구해야 했고, 자연환경을 누리고 싶었고, 협소주택은 피하고 싶어 평창동으로 왔다.

집은 한쪽 모서리가 둥근 사다리꼴 형태이다. 곡선과 직선이 조화를 이루는 집은 보는 각도에 따라 형태와 느낌이 다르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집은 한쪽 모서리가 둥근 사다리꼴 형태이다. 곡선과 직선이 조화를 이루는 집은 보는 각도에 따라 형태와 느낌이 다르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곡선과 직선이 만난 집

정ㆍ재계 유명 인사들이 사는 평창동은 대표적인 ‘부촌’으로 꼽히지만 호화 주택은 일부에 불과하다. 평창동 초입에는 소박하고 오랜 주택과 빌라들이 많다. 경사지의 가로변에 있는 부부의 집 인근도 대부분 50년 가까이 된 작은 주택들이다. 설계를 맡은 김현석 건축가(준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는 “동네 특성상 너무 튀는 집은 오랜 토박이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며 “조용히 스며들듯 두되 지루하거나 답답해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고 말했다.

부부의 집(대지면적 314㎡)은 흰색 3층 벽돌집이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다 보면 박공 지붕을 얹은 얇은 직사각형이지만, 길가에서 마주하면 견고한 벽돌이 길게 이어져 묵직함이 느껴진다. 집을 지나 오르면 집의 풍경은 또 달라진다. 둥근 모서리를 중심으로 부채꼴처럼 시원하게 사선이 펼쳐진다. 마당에서 바라본 집은 두 개의 사각기둥이 있는 반듯한 사각형에 가깝다. 곡선과 직선이 조화를 이루는 집은 보는 위치에 따라 얇고 부드러운가 하면 두껍고 강하기도 하다.

건축가는 “제한된 면적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모서리까지 집을 최대한 밀어내다 보니 모서리가 둥근 사다리꼴이 됐다”라며 “외부에서 봤을 때 자칫 꽉 막힌 듯한 느낌을 낮추기 위해 선과 각을 이용해 변화를 줬다”고 설명했다. 움푹 팬 듯한 다양한 크기의 창은 견고해 보이는 벽에 해방감을 부여한다. 깊숙이 들어간 창은 사생활을 보호해 줄 뿐 아니라 단열에도 도움이 된다.

단을 낮춘 1층 거실과 마당이 일직선으로 연결된다. 마당에는 다시 한번 단을 높여 녹지와 활동 공간을 분리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단을 낮춘 1층 거실과 마당이 일직선으로 연결된다. 마당에는 다시 한번 단을 높여 녹지와 활동 공간을 분리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곡선과 직선이 바깥에서 수평적 표정을 만들었다면, 내부는 높낮이를 통한 수직적 변화를 꾀한다. 1층 거실 한복판은 작은 우물처럼 바닥에 단차(段差ㆍ단의 차이)를 두어 주방보다 낮췄다. 주방의 천장고가 2.4m(일반적인 아파트 천장고)라면 단을 낮춘 덕에 거실 천장 높이는 3m에 가깝다. 거실 바닥에 앉으면 고창과 마당을 통해 하늘이 가만히 시야에 담긴다.

낮은 거실 바닥과 마당은 일자로 이어지고, 마당은 단을 통해 녹지와 분리된다. 평소에는 미끄럼틀 등 실외용 아이들의 장난감이 마당을 차지하고, 여름엔 물놀이 풀장으로 활용한다. 가족들이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넓지 않은 면적(건축면적 111.2㎡)을 활용하기 위해 집을 3층으로 올리면서 층고의 고민이 컸던 건축가는 “경사지를 활용해 거실 바닥을 아래로 낮춰 천장고를 높이고, 박공 지붕의 형태를 살리는 등 집 곳곳에서 높낮이에 변화를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2층 천장고는 3m, 3층은 3.3m에 달한다.

같은 층이어도 공간에 따라 높낮이가 다르다. 주방의 천장고는 2.4m지만 거실의 천장고는 2.9m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같은 층이어도 공간에 따라 높낮이가 다르다. 주방의 천장고는 2.4m지만 거실의 천장고는 2.9m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각 층마다 순환 동선도 집 내부에 활기를 더한다. 높은 천장에 맞춰 벽 대신 수납장을 설치해 수납을 해결하는 동시에 골목길처럼 다양한 동선을 만들었다. 현관에 들어오면 바로 거실과 연결되기도 하지만 다용도실과 주방을 거쳐 거실에 갈 수도 있다. 침실과 드레스룸, 목욕실과 여분의 방이 있는 2층도 각 방마다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계단 공간으로 직접 이어지기도 한다. 아파트처럼 거실을 중심으로 각 방들이 달려 있는 것처럼 연결되지 않고, 각각의 공간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건축가는 “공간을 크기, 용도, 위치 등에 한정되지 않고 사용자가 자율적으로 이용하도록 유도한다”며 “아이들은 이 동선을 활용해 숨바꼭질을 하거나 달리기를 하는 등 새로운 재미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2층 부부의 침실에는 외부로 나갈 수 있는 테라스와 창이 직각을 이루며 배치돼 있다. 시간대에 따라 달리 들어오는 빛이 공간을 풍성하게 해준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2층 부부의 침실에는 외부로 나갈 수 있는 테라스와 창이 직각을 이루며 배치돼 있다. 시간대에 따라 달리 들어오는 빛이 공간을 풍성하게 해준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2층 목욕실에는 대중목욕탕처럼 커다란 직사각형 욕조가 마련돼 있고, 아이의 키에 맞춘 낮은 세면대가 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2층 목욕실에는 대중목욕탕처럼 커다란 직사각형 욕조가 마련돼 있고, 아이의 키에 맞춘 낮은 세면대가 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어른과 아이가 함께 사는 공간

방은 계단을 올라 2층에서 시작된다. 2층에는 부부의 침실과 드레스룸, 여분의 방이 있다. 3층은 아이들이 크면 각자의 공간으로 사용할 방 두 개가 복도 끝에 나란히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부부와 아이들의 공간이 층으로 분리될 수 있다. 각각의 방에는 테라스를 포함해 두 개의 창이 있다.

테라스는 사적인 거주 공간과 공적인 외부 공간 간의 전이 공간이다. 공간의 풍성함도 더한다. 건축가는 “시간대에 따라 두 개의 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다르기 때문에 공간이 더 풍성하게 느껴진다”라며 “같은 공간에 있어도 커튼 등을 활용해 어떻게 빛을 조절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이 난다”고 했다. 두 개의 창은 환기에도 용이하다.

부부가 집을 짓고 난 후 가장 만족하는 공간은 2층 목욕실이다. 널찍한 목욕실에 대중목욕탕처럼 타일로 마감한 욕조를 뒀다. 긴 어른 세면대 끝에는 아이의 키에 맞춘 낮은 세면대를 설치했다. 습기를 잡고,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별도의 에어컨도 달았다. 세로로 긴 창을 내어 답답함을 해소하고, 환기도 쉽게 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매일 부모와 목욕을 즐긴다. 부부는 “집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사는 공간인데, 어른 편의 위주로 이뤄진 공간이 대부분이다”라며 “아이가 집에서 기본적인 생활을 스스로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각 방 손잡이도 아이의 키에 맞춰 90㎝ 높이에 달았다.

3층 테라스 벽돌 기둥 사이로 북악산이 액자처럼 걸린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3층 테라스 벽돌 기둥 사이로 북악산이 액자처럼 걸린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전망을 위해 집 앞쪽에 마당을 내지 않고 집으로 감싸 안듯 살짝 비틀어 마당을 냈다. 마당에는 100여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전망을 위해 집 앞쪽에 마당을 내지 않고 집으로 감싸 안듯 살짝 비틀어 마당을 냈다. 마당에는 100여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부부는 집의 옥상에서 전망 좋은 동네에 산다는 것을 실감한다. 널찍한 3층 테라스 벽돌 기둥 사이에 북악산이 액자처럼 걸린다. 부부는 “다른 집들은 전망을 보기 위해 마당을 앞쪽으로 내는 데 비해 우리는 마당은 살짝 감싸듯 뒤로 앉혀 사적으로 쓰고, 3층 옥상은 풍경을 감상하는 용도로 쓴다”라며 “내외부가 연결된 공간을 쓸수록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 사는 기쁨이 크다”고 말했다.

원래 부부는 ‘아파트 같은 단독주택’을 원했다. 일도 해야 하고, 육아도 해야 하니, 사실 집은 아파트처럼 편리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현실은 딴판이다. 자연경관지구인 평창동에 집을 지으려면 대지면적의 30%는 녹지로 활용해야 한다. 부부의 집 마당에는 19그루의 교목과 94그루의 관목이 촘촘하게 서 있다. 한편에는 부추와 파가 자라는 텃밭도 있다. 부부는 “뽑지 못해 기른다”라며 관리의 수고로움을 말하면서도 즐거운 내색을 숨기지 않는다. “집에서 나무를 키워서 그런지 아이들이 바깥에 나가서도 꽃을 함부로 꺾지 않아요. 직접 기른 채소들도 잘 먹어요. 굳이 설명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이 집에 살면서 자연과 친밀하게 지내는 법을 체득하는 게 아닐까요.”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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