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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짧고 굵은 한국선거, 길고 긴 미국선거

입력
2020.04.28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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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 백악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정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 백악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정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코로나19로 중단된 많은 일상 중 하나가 운동경기다. 스포츠 사랑이 유별난 미국에서는 절기의 변화를 스포츠를 통해서 느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년 같으면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고 프로농구 플레이오프가 뜨거울 시절이다. 내가 사는 위스콘신주는 미식축구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그린베이 팩커스라는 팀이 연고 구단인데, 시즌 티켓을 사기 위한 대기자 명단에 지금 이름을 올려도 30년을 기다려야 기회가 온다고 한다. 팩커스가 가장 오래된 구단 중 하나이고 유일하게 남은 시민 소유 구단이라서 자부심이 유난하지만, 여기가 아니어도 미국인의 미식축구 사랑은 대단한 구석이 있다. 가령 작년 가장 많은 사람이 본 TV 프로그램 열 개 중 여섯 개가 미식축구 경기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즌 중, 특히 플레이오프가 있는 1월에는 미식축구 이야기를 피하기 어렵다. 주변엔 온통 응원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길에서 마주치는 이웃과도 주로 미식축구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한다. 경쟁 구단 팬들 간에 술집에서 드잡이를 했다는 소식도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경기가 일주일에 한 번밖에 없고 시즌도 짧아서 그렇지, 아니면 일 년 내내 미식축구 이야기만 듣고 살 형편이다.

한국 독자들이 별로 관심 없을 미식축구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게 선거와 정치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지 않나 싶어서다. 한국은 이제 막 총선을 치렀고, 미국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대선까지 6개월도 더 남았지만 선거 운동에 대한 규제가 느슨한 미국은 사실 언제나 선거의 계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에 수천 명이 죽어 나가는 지금도 백악관 코로나19 브리핑은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장이 된 지 오래고, 언론도 코로나19가 대선후보 지지율에 미치는 영향에 촉각을 세운다. 한국의 경우 선거운동 기간이 너무 짧고 규제도 강해 유권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므로 기간도 늘리고 다양한 운동 방식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고 들었다. 일리 있는 지적이고 지나친 규제는 재고해야 하겠지만, 모든 것이 선거 쟁점화되는 미국의 기나긴 선거의 계절을 보면서 짧고 굵은 선거의 미덕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미국 선거는 마치 끝나지 않는 플레이오프 같다. 정당 정치에서 선거는 어쩔 수 없이 지지 정당을 중심으로 한 팀 스포츠가 되고, 선거기간에는 응원팀의 팬으로서의 정체성이 전면에 부상한다. 일상의 대화에서도 정치가 자주 등장하고 모든 사안을 지지 정당의 시각으로 보는 경향도 생긴다. 자연히 경쟁팀 팬과의 대화는 공통점을 찾기보다는 차이를 확인해 스스로의 이념과 입장을 더 공고화하는 계기가 된다. 또 지지 정당이 없거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낮은 사람은 대화에 끼기 어렵고 정치 과정에서 소외되기 쉽다. 긴 선거운동 기간이 그 근본 원인은 아니겠지만 미국 정치의 이념적 양극화와 다수의 정치적 무관심층을 재생산하는데 이 끝나지 않은 슈퍼볼처럼 지속되는 선거의 계절도 한몫하지 않나 싶다.

제자가 쓴 논문에 의하면 미국 정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감정의 골이 지난 30년간 많이 깊어졌다고 한다.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상대 정당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온도가 계속 내려가, 최근 자료에 의하면 상대 정당에 대한 감정의 온도가 불법 이민자에 대한 감정보다 더 차갑다고 한다. 이런 정치의 감정적 양극화는 경쟁 정당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게 만들어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을 초래하고, 사회의 여러 엉킨 매듭을 푸는 역할을 해야 하는 정치를 마비시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대통령이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화장실 살균제를 사람에게 주사하자고 해도 국민 43%가 그를 지지하는 현실은 극단적 정치적 양극화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미식축구의 짧고 굵은 플레이오프 같은 선거가 나빠 보이지 않는 이유다.

임채윤 미국 위스콘신대학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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