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출산하는 과정에서 아내를 잃은 한 홀아비가 법정 다툼 중 올린 호소문에 무려 1,700여명이 움직였다.
27일 경기 고양시 등에 따르면 시청 직원인 이성빈(45)씨는 지난 20일 시청 내부 게시판에 ‘직원분의 탄원을 간곡히 부탁드린다’는 제목으로 글 하나를 올렸다. 이씨는 지난 2017년 4월 고양 일산의 A산부인과에서 딸 출산 2주만에 아내를 떠나보낸 뒤 홀로 아이를 보고 있다.
글에서 이씨는 “병원을 상대로 힘든 의료소송을 벌여 패소했고, 이에 항소해 2심이 시작됐지만 재판부가 1차 변론만으로 유족(원고)이 제기한 감정신청 등을 기각했다”고 했다. 법원이 변론종결 결정과 함께 선고일을 지정한 것인데, ‘더 이상의 유족의 진술을 듣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씨는 당시 심정을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았다”는 말로 표현했다.
이씨는 “2심에서 밝혀야 할 중요한 진실과 사안이 너무 많다. 시간이 더 필요하고, 재판부에 변론재개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탄원 동참을 요청했다. 그는 글을 올린 뒤 지난 20~23일에는 항소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앞에서 1인 시위도 했다.
태어난 딸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낼 꿈에 젖어 있던 이씨가 아내를 잃은 것도 모자라 힘겨운 싸움까지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1,700여명이 힘을 보탰다. 단 나흘 만에 일어난 일이다. 1,300여 고양시 직원들은 물론 이재준 고양시장, 시민사회단체, 일반 시민까지 탄원에 동참했다.
이에 재판부도 이씨의 요청을 받아들여 선고일을 미루고 변론재개를 결정했다. 이씨는 “아내를 잃은 뒤 갖은 죄책감에 3년을 힘겹게 버텼다”며 “더 많은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재판부와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또 그는 “이제 세 번째 생일을 맞은 딸 아이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앞서 이씨는 “아내가 출산 후 2주만에 수혈도 못 받고 과다출혈로 숨졌다”며 지난 2018년 1월 A산부인과 의료진을 상대로 의료과실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양=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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