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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집의 통찰력 강의] 코로나19, 파란하늘 그리고 책

입력
2020.04.27 18: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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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을 찾은 소년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맑은 하늘을 감상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서울 남산을 찾은 소년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맑은 하늘을 감상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세상의 모습도 바꿔놓았다. 여러 날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잃는 것에 비해 보잘것없는 걸 얻었다고 타박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뜻 깊다. 아름다운 꽃 보러 가지 못해도 파란 하늘 볼 수 있으니 다행이다. 꽃이야 내년에 다시 볼 수 있지만 파란 하늘 다시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당연했던 파란 하늘이 이리 반가운 것이었다니!

편리한 것들이 널려 있다. 자동차, 전기, 컴퓨터, 통신 등 하나라도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자동차는 편리하지만 매연이라는 달갑지 않은 부산물을 쏟아놓는다. 파란 하늘을 잿빛으로 덮는 주범이라고 질타한다. 그래도 없으면 안 되니 모른 척한다. 코로나19로 교통량이 줄면서 파란 하늘을 되찾았다는 건 그래서 불편한 진실이다. 공장의 굴뚝이나 자동차 배기가스는 눈에 보인다. 그래서 그걸 조금이라도 줄여 볼 대책을 세운다. 시민들도 기꺼이 참여한다. 그러나 여전히 파란 하늘은 보기 어렵다.

갈수록 정보의 양은 거대하고 그것을 분석 처리하고 가공하는 능력은 증가한다. AI와 빅데이터의 세상이 된다. 굴뚝도 배기통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쓰면서 공해나 오염을 떠올리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런데 2019년 MIT의 연구에 따르면 자연어 처리 모델을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약 284만 톤쯤 된다고 한다. 대략 한 사람이 1년에 배출하는 탄소가 약 5톤쯤 된다고 하니 엄청난 양이다. 자동차 한 대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배출하는 탄소량보다 5배나 많다. 그런데 그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 시스템은 ‘클린’하고 심지어 친환경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지난 선거에서도 빅데이터의 위력은 여전했다. 갈수록 데이터의 양은 거대해지고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도 복잡해진다. 그게 그냥 공짜로 만들어질까? AI알고리즘과 빅데이터의 수행은 엄청난 에너지를 삼켜야 비로소 가능하다. 어마어마한 전기를 소비한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비트코인이 도시 외곽에서 엄청난 컴퓨터를 돌려서 채굴된 것도 결국 전기의 사용과 밀접하다. 그 전기의 상당 부분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소에서 생산된다. 당장 내 눈앞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나는 정보의 접속과 사용을 통해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갈수록 그 의존도는 높아질 것이다.

빅데이터의 자료가 많을수록 적중도와 효율은 높아진다. 당연히 더 많은 데이터 축적을 모색한다. 기본적으로 천만에서 억 단위의 데이터를 축적한다. 거기에 소요되는 전기의 소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 AI기술과 많은 데이터의 상관관계에는 돈이 끼어든다. 미래에는 빈부 격차가 재화가 아니라 정보의 차이로 결정된다는 건 이제 상식인 세상이다. 그것을 독점하는 엄청난 자본은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엄청난 전력을 소비하고 탄소를 배출한다.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오염에만 주목하는 사이 감당할 수 없는 오염이 발생한다. 당연히 환경과 생태의 문제에서 이걸 놓치면 치명적인 과실을 수수방관하는 셈이다.

최근 전문가들은 억 단위의 빅데이터 패러다임을 탈피해서 스몰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만 단위 정도의 데이터로 정확도를 높일 수 있으면 굳이 억 단위의 데이터와 전력을 낭비해서 과다한 탄소를 배출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그 기회를 놓치면 억 단위 데이터를 기본으로 하게 되면서 스몰데이터의 활용은 무시되고 우리는 과도한 데이터 낭비와 탄소 배출을 감내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일시적으로 우리에게 파란 하늘을 돌려줬다. 인간의 생산과 소비 활동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위세가 꺾이고 이전의 일상으로 회복하게 되면 우리는 다시 파란 하늘을 보기 어렵게 될 것이다. 당장은 감염의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니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감내해야 한다. 잠깐의 방심이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계심을 늦출 수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갖게 된 건 부수적인 선물이다. 이 시간에 한 권의 책이라도 더 읽을 수 있는 기회로 만들면 좋을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원하는 지식과 정보는 언제 어디서나 쉽게 획득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멀리 했던 책이다. 책은 파편의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체계적이고 깊은 내용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읽으면서 이성과 감성을 소환하며 많은 성찰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AI나 빅데이터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고 탄소의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보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책과의 거리 줄이기로 이어보는 것도 이 시기에 좋은 방편일 것이다. 모처럼의 파란 하늘을 오래 만날 수 있기를, 다음 세대는 더 좋은 하늘을 누릴 수 있기를, 사회적 거리 두기를 우울하게 견딜 게 아니라 멋지게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하자. 파란 하늘이 어쩌면 예쁜 꽃보다 더 아름다운 봄이다. 희망은 언제나 가능한 일임을 깨닫는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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