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에는 댐 때문에 집이 침수가 돼서 고생을 했는데, 이번엔 불에 다 타버렸네. 좀 살만하다 했더니…”
26일 경북 안동 남후면 고하리 마을에서 만난 김익동(72)씨는 산불로 형체가 사라진 집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마을 초입에 위치한 김씨 주택 좌측 벽은 화마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마당에 있던 트랙터와 고추건조기도 전소됐다. 침구와 책장 및 가전제품 등 가재도구는 화재에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거대한 화마가 안동 주민들의 생활터전을 할퀴고 지나갔다. 소방 당국의 재빠른 대처로 피해는 최소화했다지만 26일 산불을 피하지 못한 일부 주민들은 삶의 기반을 잃고 망연자실해했다.
10여 세대가 살고 있는 고하리는 피해가 가장 큰 마을 중 하나. 주택이 전소된 김익동씨는 “강한 바람을 타고 온 불똥이 뒷산으로 번진 뒤 집까지 옮겨 붙었다”면서 “30분만에 집이 사라지고 말았다”고 전했다. 40년간 고하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김씨는 당분간 지낼 숙소가 마땅치 않은데도 고추 농사부터 걱정했다.
고하리의 한 양돈 농가는 이번 산불로 돼지축사 건물 4동과 돼지 800마리를 한꺼번에 잃었다. 축사 주변엔 온몸에 화상을 입은 돼지 서너 마리가 바닥에 누워 간신히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불에 탄 수백 마리 돼지가 풍기는 악취에 마스크를 착용한 방역 관계자들도 표정을 찡그릴 정도였다. 주민들은 “산불이 돼지축사로 번지는 바람에 손도 쓰지 못하고 당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야산과 인접한 밭에 심은 농작물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고하리 인근 단호리에서 유독 피해가 컸다. 단호리 주민 건모(57)씨의 경우 감자밭 200평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다. 고추를 심기 위해 비닐 씌우기 작업을 해놓았던 고추밭도 전소됐다. 산불이 발생한 사흘 동안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는 건씨는 “집에서 점심을 먹고 밖에 나오는데 뒷산이 활활 타고 있었다”면서 “동네 어르신들을 대피시키고 불이 옮겨 붙지 않도록 뛰어다니느라 농작물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안동 산불로 대규모 산림 피해가 발생했지만 주민들의 직접 피해는 크지 않았다. 산불이 발생한 24일부터 3일내내 소방당국이 마을마다 소방차를 배치, 물대포와 방수포를 활용해 마을 내부로 산불이 접근하는 걸 사전에 방지한 덕분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안동=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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