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촌 봉쇄돼 감염위험에 탈출
말레이 정부, 밀입국선 막아
식량ㆍ물 떨어져 수백 명 사망

감염병이 두려워 임시 거처를 떠난 로힝야족 난민들이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다. 미얀마 정부의 박해를 피해 방글라데시로 대규모 탈출을 감행했다가 이번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 앞에 터전을 떠난 것이다. 정착을 기대한 말레이시아도 집단감염을 우려해 이들을 내쫓기에만 급급한 탓에 로힝야 난민은 다시 떠돌이 신세로 전락했다.
26일 국경없는의사회(MSF)와 뉴스트레이츠타임스 등 현지매체 보도에 따르면 최근 열흘 사이 로힝야 난민 수백명이 말레이 인근 해역에서 수분 부족과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앞서 17일 말레이 정부가 밀입국을 시도한 로힝야족 396명을 수용한 뒤 더 이상 난민 유입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말레이 정부는 20일 난민 200명을 태운 밀항선을 추방했으며 이후 해상 순찰을 한층 강화했다. 현재 1,000명 이상의 로힝야 난민이 탄 밀입국선 3척이 말레이 인근 해역에 표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MSF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 파악이 어려울 만큼 수많은 로힝야족이 밀입국선 안에서 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말레이 정부의 입국 거부로 밀항선의 항해 기간이 길어지자 식량과 물도 떨어졌고, 이에 바닷물을 마시는 사람들이 속출해 사망자가 폭증한 것으로 MSF는 추정하고 있다.
로힝야 난민들의 표류는 이달 8일 방글라데시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억제를 명목으로 난민 100만여명이 밀집한 콕스바자르지구를 전격 봉쇄하면서 시작됐다. 난민촌이 비닐과 대나무 등으로 만든 움막 구조라 가뜩이나 감염병에 취약한 데다 이동까지 막히면서 자연스레 밀입국 수요가 폭증했다. 방글라데시 정부 입장에선 자국민 치료 장비도 부족한 터라 난민촌 봉쇄 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었다.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족은 2017년 8월 미얀마 군부의 유혈탄압이 시작되자 국경을 접한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등으로 대거 이동했다. 방글라데시 정부의 수용정책 발표 후 110만명까지 규모가 커졌다. 국제사회는 미얀마 정부의 학살로 최소 9,000여명의 로힝야족이 숨진 것으로 추산한다. 유엔은 로힝야족 난민 사태를 ‘인종청소 교과서’로 규정하기도 했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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