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에서 패배한 나경원 미래통합당 후보는 원내대표 시절 보수 진영에서 ‘여전사’라는 칭호를 얻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고 부르고 패스트트랙 사태 때는 빠루(노루발목뽑이)를 들고 의원들을 지휘한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다. 문재인을 지지하는 여성들을 비하하는 속된 말인 ‘달창’ 발언을 하고는 ‘달빛 창문’이라고 둘러댔던 그다. 이런 전력은 고스란히 이번 선거 낙선으로 돌아왔다. 여당 총선 책임자로부터 “(나 후보가) ‘국민 밉상’이 돼 있어 상대하기 어려운 지역이 아니었다”는 수모까지 당했다.
□ 이른바 ‘국민 밉상’으로 불린 정치인들이 이번 총선에서 무더기로 퇴출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막말 정치인’으로 선정한 17명 중 12명이 국민들로부터 철퇴를 맞았다. 2015년 “세월호 인양에 돈도 시간도 너무 많이 드니 아이들을 가슴에 묻자”고 했던 김진태 의원이 떨어졌고, 세월호 유가족에게 “좀 가만히 있어라”고 고함을 친 우리공화당 조원진 후보도 낙선했다.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는 “김진태, 심재철, 조원진을 지워버린 게 안산에서 분홍색을 싹 다 지워버린 것보다 더 기쁘다”고 했다. 막말을 주무기로 ‘여당 공격수’를 자처했던 차명진, 민경욱, 이언주, 이은재 후보도 일제히 낙마했다.
□ 막판까지 공천 잡음이 일었던 대표적인 막말 정치인인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과 차명진 전 의원이 이번에는 사전투표 조작 음모론에 뛰어들었다. 차 전 의원은 일부 보수 유튜버의 의혹 제기에 “통합당 지도부는 무엇을 하느냐”며 호통을 쳤고, 민 의원은 “모든 사람을 잠깐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링컨 대통령의 명언까지 꺼내 들며 가세했다. 실오라기라도 잡아보려는 의도지만, 근거 없는 의혹 제기에 역풍이 불까 되레 통합당에서 진화에 더 적극 나서고 있다.
□ 통합당은 20대 국회 내내 막말 파문의 한가운데 있었다. 황교안 당 대표부터 초선 의원까지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사회적 약자를 비난했다. 국민들의 비판을 받더라도 지지자들에게 존재감을 보이려는 욕심에서였다. 막말 정치인을 솎아내기 위해 총선까지 임기 4년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 길다. 문제 의원을 신속히 걸러낼 수 있도록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 다행히 여당의 이번 총선 공약에 포함돼 있는 만큼 21대 국회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한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높아진 나라의 품격에 걸맞게 정치 수준을 높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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