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어느 새 90만명을 육박하고 사망자도 5만명을 넘어섰다. 전 세계에서 감염자 1위국에 올랐고 치명률도 우리보다 2배나 높다. 세계 최고 의료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앞에 이렇게 맥없이 무너지리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지경이 된 데에는 미국 정책 당국이 코로나19를 과소 평가해 초기 대응에 실패한 탓이 크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제대로 된 공공의료를 갖추지 못해 감염병 방어 시스템이 취약한 데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미국 의료비는 엄청나게 비싸다. 코로나19 진단을 위한 검사비만 해도 400만원이 넘는다. 의료보험료도 너무 비싸기에 전체 미국인의 8.5%(2,750만명)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다. 코로나19 감염 증상이 나타난다 해도 병원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코로나19 유행으로 미국 의료 시스템의 민낯이 드러난 셈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방역의 모범국가에다 의료천국이라는 세계의 찬사를 받고 있다. 100여 개국이 우리나라에 도움과 공조를 요청할 정도다. 빌 게이츠는 “미국이 본보기로 삼을 나라는 한국이다. 엄격한 봉쇄 없이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아냈다”고 칭찬했다.
이런 찬사를 듣게 만든 일등공신은 최상의 진료를 저렴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한 건강보험이다. 건강보험은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직장의료보험에서 기틀을 마련한 이래 2000년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이 통합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물론 낮은 의료수가를 견뎌내는 많은 의사들의 희생과 헌신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 의료 특히 건강보험은 이제 미국을 좇아가는 추격자가 아니라 벤치마킹의 모델로 우뚝 섰다.
하지만 샴페인을 터트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감염병은 몇 년 주기로 끊임없이 찾아와 괴롭힐 것이다. 전문가들은 벌써 올 가을에 ‘2차 대유행’이 올 것이라고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공의료의 중요한 역할인 감염병 방역은 일상적이지 않고 별로 돈도 되지 않기 때문에 소홀히 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안 된다. 불이 나지 않는다고 소방서를 없애면 안 되는 것처럼. 공공의료는 국민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핵심적인 수단이자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다.
그런데 우리의 공공의료를 찬찬히 뜯어보면 곳곳에 구멍이 많다. 코로나19 감염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감염내과 의사가 고작 250여명이다. 코로나19의 사령탑인 질병관리본부는 직원의 절반가량이 비정규직이다. 5년 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을 겪으면서 공공병상 확대와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을 약속했지만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공립대학병원을 포함해도 공공의료기관 수는 여전히 전체의 5.4%, 병상 수는 10%에 불과하다. 의사도 크게 부족하다. 2017년 기준 1,000명당 의사 수는 한의사를 포함해도 2.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의사 수(3.4명)의 67.6%에 불과하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우리나라 의사 수가 2030년에는 7,600명이 모자라고 이 가운데 공공의료 부문에서는 2,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했다. “언제까지 질병관리본부와 의료진의 헌신과 국민 인내에만 기댈 건가”라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1994년 보건사회부가 보건복지부로 개편된 이래 보건과 복지가 한 지붕 두 가족을 이루고 있다. 보건과 복지는 지향점이 전혀 다르다. 따라서 보건복지부에서 오롯이 국민 건강 증진과 질병 예방, 감염병 통제 등을 비롯한 공중보건 업무를 전담하도록 하는 ‘보건부’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처럼 보건의료 분야 최고 전문가와 전략가가 모인 ‘국가보건회의’를 만들어 방역의 컨트롤 타워로 삼자는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만하다.
내일(28일)이면 코로나19 감염 확진자가 발생한 지 벌써 100일이다.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Never waste a good crisis)”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말을 되새길 때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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