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도와달라는 아우성 곳곳 쏟아지는데
곳간지기 소신 내세워 버티는 게 정답인가
경제와 재정을 함께 보는 부총리를 원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그런 것처럼, 경제 후폭풍 역시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3%로 전망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란다. 이것도 코로나19가 하반기에 다소 진정된다는 걸 전제한 수치다.
정부 일각에선 IMF가 예측한 우리나라 올해 성장률이 선진국들보다는 나은 -1.2%라는데서 그나마 위안을 찾기도 한다. 한 고위 인사는 SNS에 “이번 충격이 서비스업 중심으로 왔는데 우리는 제조업 등 직접 충격이 적은 분야에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이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건, 선진국 소비시장 충격이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제조업의 충격으로 시차를 두고 전이될 수밖에 없어서다. 이미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수출이 선방했던 1분기조차 성장률이 11년 만에 최저(-1.4%)였다. 이달 들어서는 수출 충격이 현실화(1~20일 -26.9%)하고 있으니, 2분기가 1분기보다 훨씬 나쁠 거라는 건 자명하다.
재난에 준하는 이 엄중한 상황을 돌파할 키맨은 사령탑이다. 방역 최고 책임자인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일관된 논리, 솔직한 정보 전달, 정확한 분석, 침착함과 인내심으로 한국인에게 강한 신뢰감을 안겼다”(미 월스트리트저널 샘 워커 칼럼)는 평가를 받듯, 경제에서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민들 눈에 비친 홍 부총리는 “안 된다”며 버티는 모습뿐이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국민 50%에서 70%로 넓힐 때 무슨 위원회 멤버 중 한 명인 것마냥 “반대 의견을 기록으로 남겨달라”고 무책임한 발언을 했고, 100% 확대에는 고소득자를 위해 나라 빚을 만들 수 없다며 결사 반대했다. 정세균 총리의 강한 질책을 받고서야 마지못해 수용하긴 했지만, 약삭빠른 미래통합당에는 확실한 반대 빌미를 줬다. ‘긴급‘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 지원금은 언제 국민들이 쥐어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예스맨‘이라는 낙인이 강했던 홍 부총리가 갑자기 ‘노맨’으로 돌변한 배경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지만, 그의 경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는 옛 기획예산처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주로 예산 분야 업무를 맡아온 ‘예산통’ ‘재정통’이다. 그를 잘 아는 전직 경제 관료는 “비록 비전공 분야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전공인 나랏돈과 관련해서는 한 번도 아니고 계속 ‘패싱’ 당할 수 없다는 자존심의 발로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솔직히 돈 100만원이 경제를 살릴 대단한 메기 역할을 하진 않을 거라고 본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 재정건전성 관리는 매우 엄격해야 한다는 데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원칙만 따지고 있을 한가로운 시기가 아니다. 평시에 재정을 촘촘히 관리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위기 상황에서 쓸 여력을 비축해두기 위함이다. 지금 돈을 써서 경제를 살리는 게 훗날 곳간을 조금이라도 더 채울 수 있는 방안일 수 있지 않은가.
더구나 경제는 심리다. 경제부총리가 곳간 타령만 하며 번번이 버티기만 하는 모습에 그게 옳든 그르든 국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곳간이 정말 우려된다면 신속히 지급하되 30%를 환수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찾았어야 했고, 지급된 돈이 허투루 낭비되지 않고 제대로 쓰일 방안을 고민했어야 한다.
더 크고 무서운 ‘놈’이 온다는 경고가 끊이질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홍 부총리에게 경제 중대본을 맡겼는데, 이런 걱정이 앞선다. ‘기획재정부‘ 장관이면서도 ‘기획’은 빼고 ‘재정‘만 매달리듯, 혹시 경제 중대본조차도 재정 중대본으로 운영하는 건 아닐지. 예고된 3차 추경에서도 같은 공방을 되풀이하며 야당에 앞서 그가 먼저 발목을 잡는 건 아닌지. 홍 부총리 스스로 꼭 자문해봤으면 한다. 본인은 경제사령탑인가, 재정사령탑인가.
이영태 디지털콘텐츠국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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