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재무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때 쓰는 CFMITYM이라는 약어가 있습니다. 전문용어처럼 들리지만, 사실 영어로 “현금흐름이 너희 엄마보다 더 중요해(Cash flow is more important than your mother)”라는 말을 줄인 일종의 속어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제품과 서비스를 가진 기업이라도 현금이 부족해지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지금 아주 새삼스럽습니다. 전 세계 경제활동이 멈추면서 많은 기업들이 현금흐름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기기업들은 더 어렵습니다. ‘스타트업지놈’이라는 기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세계 스타트업의 42%는 이대로 가면 3개월 안에 현금이 소진될 것 같다고 응답했습니다. 투자통계들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1분기 전 세계 벤처캐피털 투자는 전년 동기에 비해 20%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납니다.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19 상황이 4월에 더 나빴다는 점을 감안하면, 2분기의 감소폭은 훨씬 더 클 것입니다. 직접 만나 창업자의 눈빛을 살펴보고, 회사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대신 화상회의만으로는 투자를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간 크게 활발해진 글로벌 투자활동에도 급제동이 걸렸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분기 스타트업 투자액은 전년 동기 대비 5%가량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펀드의 결성금액은 20%나 줄어들었습니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모험자본에 새로 돈을 넣기보다는 일단 현금을 가지고 있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런 분위기를 정부가 눈치채고, 벤처캐피털에 지원하는 정부자금 규모를 빠르게 증액했습니다. 최근 모태펀드의 벤처캐피털 대상 출자과정에서는 벤처캐피털들이 얼마나 빨리 펀드를 결성하고 얼마나 신속하게 투자할 예정인지에 따라 평가점수가 달라졌습니다. 신속한 투자로 기업들이 돈줄이 말라 쓰러지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입니다. 칭찬할 만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스타트업들의 어려움은 매우 큽니다. 특히 여행 레저 문화 영역의 초기기업들과 해외를 영업 대상으로 삼는 기업들은 매출이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습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조사에 따르면 40%가 넘는 스타트업들이 매출감소로 힘겨워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와 고통이 스타트업들에 기회의 창을 열어준 경우도 많았습니다. 자금과 인력 부족 상황에서 창의적 대안을 찾아내는 능력이야말로 스타트업들이 가진 진정한 강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돈의 부족 사업을 성공시켜야 하는 극단적 제약 조건이 오히려 스타트업들로 하여금 혁신적 제품, 서비스, 그리고 사업모델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셈입니다. 누추한 여관방을 사무실 삼아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들어냈던 빌 게이츠의 사례로부터 동일본 대지진 혼돈 속에서 탄생한 라인의 사례까지, 자원 결핍으로 오히려 축복받게 된 역설은 많습니다.
기특하게도 그런 조짐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육이나 회의 관련 솔루션들이 거대 해외기업들의 틈새를 뚫고 공격적인 가격정책을 펼치기도 하고, 경쟁사끼리 합병하여 힘을 모으겠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류가 처해 있는 현재의 거대한 문제를 자신들의 제품이나 서비스로 해결해보겠다는 대담한 스타트업들이 우리나라에서 속속 탄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단키트를 만드는 기업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지만 폐 엑스레이를 통해 코로나19를 진단하는 인공지능기업, 줄서기 앱을 통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구현한 회사, 3D 프린팅으로 의료장비를 만드는 기업들도 연이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혼란과 충격이 걷힐 무렵, 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우리 산업의 차세대를 이룰 세계적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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