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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응급실의 숨은 천사, 여사님

입력
2020.04.27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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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 하면 대부분 가장 먼저 의사를 떠올린다. 드라마나 영화 속 병원은 의사와 간호사만 일하는 공간 같다. 소설이나 에세이도 의사가 주로 등장하거나 의사가 쓴 것이 대부분이다. 실제 병원 업무에서 의사가 중심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의사는 환자를 진찰해 진단과 처방을 내리며 설명을 하거나 직접 시술을 맡는다. 환자 입장에서 이는 진료의 거의 모든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또한 병원 업무도 의사의 처방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돌아간다.

처음 병원 근무를 시작할 때는 자신의 일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금 주어진 일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찼고 잘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내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직종 분들에게 쉽게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업무에 조금 익숙해지자 내 일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병원에는 의사와 간호사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직종에서 일한다. 영상을 찍고 환자를 안내하거나 이송하고 전산을 유지하고 시설을 보수하고 약을 설명하고 비품이나 서류를 정리하는 일뿐만 아니라, 병원 일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모든 일이 의사의 처방을 지탱하고 있었다. 구조를 계속 이해하다보니 각자는 직업적으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그들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내 진단이나 처방, 처치는 하나도 수행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중 내게 유난한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던 분들은 ‘여사님’으로 불리는 미화원이었다. 의사들은 응급실이나 수술방에서 버려지는 의료 폐기물에 대해서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오히려 감염 문제 때문에 폐기물을 바닥에 험하게 버리고, 환자들은 각종 오물이나 피고름을 사방팔방으로 쏟아낸다. 하지만 곧 그것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병원의 하얀 풍경으로 돌아간다. 이 일. 누군가는 바라보기도 힘겨운 치열한 사투의 흔적을 파고들어 말끔하게 치워내는 일.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하게 병원에서 가장 고된 노동을 하는 사람들. 나는 내 업무를 가능하게 하는 모든 직종을 존중하지만, 이 일이야말로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숭고한 업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독 서비스의 원조 이슬아 작가가 내게 물었다. 나에게 가장 큰 인상을 준 사람을 공부할 수 있게 인터뷰 코너에 소개해 달라고 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응급실 청소 여사님을 지목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나 스스로도 너무 듣고 싶은 목소리였다. 다만 내부자의 시선으로 알리는 것보다는 외부의 다른 시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슬아 작가는 그 적임자였고, 응급실에서 가장 오래 일한 여사님 또한 흔쾌히 인터뷰를 허락해 주셨다.

이윽고 인터뷰 기사를 받았다. 그것은 단연코 어떤 유명인이나 석학의 인터뷰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었다. 이십칠 년 동안 매일 새벽 네 시 십 분 버스를 타고 출근해서 병원에서 쏟아지는 피와 오물을 청소하는 사람. 손주뻘인 의사와 간호사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타인의 죽음에 아직도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나서 죽겠다는 사람. 부모를 일찍 여의고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도 글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 한 달에 네 번 쉬는 날 독거노인에게 청소 봉사를 이십 년간 해온 사람. 아들과 남편을 잃고 사는 게 고달파서 더 힘든 사람을 생각했다는 사람. 그럼에도 맡은 일은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사람. 그것이 한 사람이었다. 나도 잘 몰랐지만 내 곁에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인터뷰지를 받았다. 그것을 많은 직원이 볼 수 있게 스테이션 한가운데에 두었다. 여사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여사님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조금 당당해지신 것 같았다. 그것은 내가 올 들어 가장 잘한 일이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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