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 신분으로 이웃 구조하고도 “더 구했어야” 자책
“의상자로 지정, 영주권 주자” 여론에 법무부 검토 들어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화재 현장에서 불길에 뛰어들어 이웃을 구한 카자흐스탄 국적 알리(28)씨가 10여명의 목숨을 살리고도 현장에서 숨진 한 여성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리씨의 선행에 법무부는 그가 한국에 더 머무를 수 있도록 그의 체류 자격 변경 절차에 착수했다.
알리씨의 이웃으로 그의 치료를 돕고있는 장선옥 강원 손양초교 교감은 2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알리씨가) 거의 그 사고 이후로 잠을 못 자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장 교감은 “화재 현장에서 마지막으로 구하려고 들어갔던 분이 후송 중에 돌아가셨는데, 자기가 조금 더 일찍 들어갔으면 살릴 수 있었다는 죄책감으로 매우 괴로워한다”고 설명했다.
카자흐스탄이 고향인 알리 씨는 지난달 23일 강원 양양에서 자신이 사는 집에 불이 나자 이웃 주민들을 대피 시키고, 이어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 갇힌 주민을 구조하러 가스배관을 타고 2층 방으로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거센 불길에 손과 목, 등에 2,3도 화상까지 입었으나 그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불법체류자)란 사실이 들통날 것이 두려워 현장을 떠났다.
이웃들은 이후 알리씨를 찾아 속초의 한 병원으로 데려갔으나 상처가 깊은 탓에 서울의 한 화상 전문병원으로 옮겼다. 이 병원에서 알리씨의 불법체류 사실이 주변에 알려졌다. 장 교감은 “치료를 받던 알리에게 ‘신분이 들통날 텐데 왜 불 속으로 뛰어들었어’라고 물었더니 ‘사람은 살려야 하잖아요’라는 답변을 들었다”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그 말을 듣고 무너져 내렸다”고 전하기도 했다.
알리 씨의 사연에 그에게 영주권을 주자는 여론이 이어졌고 의상자 건의도 추진 중이다. 법무부는 알리씨가 회복할 때까지 국내 체류가 가능한 기타(G-1) 비자를 발급하고, 의상자로 지정되면 영주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장 교감은 이에 “치료만 받을 비자연장만 생각했지 영주권은 상상도 못했다”며 “알리가 이 소식을 들으면 (좋아서) 기절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알리씨 전에도 불법체류 신분인 외국인에게 영주권이 주어진 사례가 있다. 스리랑카인 니말(41)씨는 2017년 2월 경북 군위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서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 90대 할머니를 구하면서 불법체류 스리랑카인으로는 처음으로 영주권을 받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알리씨에게 영주권을 주자는 청원이 이날까지 2만명 이상 동의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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