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16구ㆍ맨해튼 코로나 번지자 주민들 휴양지로 떠나 공동화
빈촌 브롱크스ㆍ퀸스는 감염 만연… 외지인 유입 휴양지 감염 공포
전 세계를 휩쓴 감염병 대유행 앞에 서구사회가 그토록 강조하던 ‘통합’과 ‘연대’의 가치는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부유층은 지방 별장으로 피신해 호화 격리생활을 누리는 반면 평범한 시민들은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감염병 ‘계급 사회’가 일상이 된 것이다. “나부터 살고 보자”는 극한 이기주의에 서방의 우월적 특권을 상징해 온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요 외신은 요즘 미국과 유럽의 부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프랑스 부유층의 ‘파리 탈출’ 러시를 보도했다. 부촌으로 유명한 파리 16구는 지난달 17일 봉쇄령 발효 전까지 주민 15~20%가량이 소도시로 빠져나갔다. 이에 반해 서부 휴양지 누아르무티에섬은 봉쇄령 2주 만에 인구가 두 배 가까운 2만명까지 불어났다. 인구밀도가 높아 바이러스에 취약한 도시를 떠난 이들이 쾌적한 환경으로 피신한 것이다. 프랑스에는 도시 주거지 외 별장을 보유한 사람만 34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지도층의 사회적 의무를 강조하고 그 어원을 탄생시킨 나라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모습이다.
현대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미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이 코로나19 최대 피해국으로 자리잡으면서 뉴욕 맨해튼의 부촌은 아예 ‘유령 도시’가 됐다. 시 위생국이 집계한 지난달 쓰레기 수집량 결과, 맨해튼 부촌은 전년 동월대비 5%가량 감소했지만, 나머지 지역은 자가격리 여파로 10% 이상 늘었다. 지역 숙박공유 서비스를 찾는 수요도 증가하는 추세다. 에어비앤비 데이터 분석회사인 에어디앤에이에 따르면 지난달 미 소도시 매출은 전년과 비교해 2억8,000만달러(약 30%) 늘어난 반면, 도시지역 수입은 7,500만달러 감소했다. 코로나19 집중 발병지인 뉴욕ㆍ뉴저지주(州)의 예약도 66% 줄었고, 매사추세츠주 남동부의 유명 휴양지인 케이프코드는 무려 600%나 폭증했다.
부유층이 밀려들면서 지방 도시들은 감염 불안에 떨고 있다. 이들 지역 대부분은 의료환경이 열악하고 고령자 비율이 높아 코로나19 확산 대응에 취약하다. 프랑스 누아르무티에섬은 단 6명의 의사가 모든 환자를 책임져야 하는데, 외지인들이 이동제한령을 어기고 해변에서 피크닉을 즐기거나 식료품을 쓸어가 주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탈리아 남부에서도 바이러스 확산 책임을 북부 부유층에 돌리는 목소리가 높다. 시칠리아의 한 보건위원은 지역방송에 나와 “북부 봉쇄 직전 4만명 이상이 시칠리아로 유입된 뒤 확진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분개했다.
상대적 박탈감 역시 커지고 있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생계에 나서야 하는 저소득층의 삶은 휴양지에서 유유자적하는 부자들의 일상과 극명히 대비된다. 비극은 통계로 확인된다. 25일(현지시간) 뉴욕시 집계를 보면 맨해튼 인구 10만명당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992명이지만 가난한 동네인 브롱크스와 퀸스는 각각 2,308명, 1,868명에 달했다. 맨해튼 흑인 빈민가로 꼽히는 센트럴 할렘의 지난달 응급실 내원 환자 수도 지난 4년 같은 기간 평균보다 220% 상승했다.
매슈 버나드 영국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대 교수는 “우리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라고 배우지만 실제 위협 앞에선 자신만큼은 예외로 인정하고 싶어 한다”며 “서구사회의 거리두기 지침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개인의 윤리의식에만 기대다 정부가 감염병 양극화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있다. 칼럼니스트 메건 오루크는 미 시사주간 애틀랜틱에 “미국인들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개념에 중독돼 위기에 처한 타인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면서 “국가와 공동체의 역할이 지금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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