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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변화, 코로나 총선 이후] “공동체, 국가다움, 안전이 시대정신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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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변화, 코로나 총선 이후] “공동체, 국가다움, 안전이 시대정신 화두”

입력
2020.04.24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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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20시대정신의 재정립-전문가 좌담회

박명호 교수 “가치의 교체ㆍ변화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봐야”

김윤철 교수 “대한민국 정당은 성공한 아저씨들을 위한 곳 확인”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열린 4ㆍ15 총선 좌담회에 마주 앉은 박명호(왼쪽부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정준희 인턴기자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열린 4ㆍ15 총선 좌담회에 마주 앉은 박명호(왼쪽부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정준희 인턴기자

4ㆍ15 총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 속에 치러졌다. 여당의 180석 압승이라는 정치적 결과 외에도 다양한 함의를 남겼다. 이번 선거가 정치는 물론 사회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본보는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진행하고,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함께 하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난 흐름을 짚어보고 다가올 사회 변화 양상을 전망하기 위해서였다. 좌담회는 2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이번 선거 결과를 ‘냉전수구보수’의 몰락으로 보면서도 사회 주류 교체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코로나 총선 이후 대한민국 시대정신에 대해선 “국민 생명 보호와 안전 문제” “공동체 복원과 회복”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와 국가다움” 등의 화두를 던졌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2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21대 총선 결과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2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21대 총선 결과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김호기 교수= 언론을 중심으로 이번 선거의 특징 중 하나를 보수 세력의 몰락으로 꼽는다.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그리고 보수가 재건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박명호 교수(이하 박)=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세 번째 전국 단위 선거였는데 점점 패배의 강도가 세지고 있다. 보수의 몰락이 확인된 선거라 할 수 있다. 세대 구성의 변화, 이에 따른 가치의 변화를 전혀 감지해 내지 못한 게 보수 패배의 주요 원인이다.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이후에도 매번 똑같은 해법이 나왔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악화됐지 특별히 바뀐 게 없다. 재건 가능성을 찾기 어렵지 않나 싶다.

김윤철 교수(이하 김)= 보수 몰락을 말하기에 앞서 이들이 어떤 보수였느냐는 물음을 먼저 던져야 한다고 본다. 지금 몰락한 세력의 정체성은 냉전수구보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반공과 성장주의, 민중배제적 성격을 갖는 세력의 몰락이라 할 수 있다. 시대에 조응하지 못한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걸고자 했던 게 지금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선거 결과를 제대로 된 보수의 등장을 기대하는 신호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않나 싶다.

김호기 교수= 현실적 개념으로 풀면 시장보수는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안보보수는 박근혜 정부를 경유하면서 심판 받았다. 박근혜 탄핵 이후 치러진 선거 과정에서 제3의 보수가 등장했어야 하는데 여전히 이런 틀 안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선거 이후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가 교체됐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반박도 나오는데 어떻게 봐야 하는가.

김= 주류 교체라는 얘기가 나온 걸 보면서 의아했다. 정치권 내, 적어도 여의도 국회 내 주류 교체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대한민국 전체 사회의 주류가 보수에서 진보로 교체된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과장됐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나 이런 부분들이 딱히 쟁점이 되지 못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어떤 가치에 대한 추종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권으로 다시 범위를 좁혀도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 탄탄한 사회적 기반을 가진 정치집단이냐’ 하는 부분도 여전히 두고 봐야 할 문제다.

박= 저도 아직 주류 교체가 완성됐다는 표현을 하기에는 이르다고 본다. 정치세력적 차원을 포함해서 최소한 가치의 교체, 혹은 변화의 초입 정도가 적절하지 않나 싶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지역구 투표나 정당비례투표 모두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격차가 8~ 10%포인트 정도였다. 10~ 15%의 중간 그룹이 있다고 치면 5%의 이동만으로 상황은 언제든 역전될 수 있다. 아직도 유동성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이는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는 문제다.

김호기 교수= 여권이 180석을 차지하는 일은 유례가 없다. 제2공화국 출범 당시나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만들어진 민주자유당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이는 선거결과에 따른 게 아니라 인위적인 정당 통합의 결과였다. 거대 여당의 탄생이 가져 올 여러 지형 변화가 예상된다.

박= 민주당 입장에서는 대단히 공포스러운 시작이다. 온전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차원에서 하는 얘기다. 여권 입장에서는 양날의 칼이다. 대선 직전까지 과연 얼마나 체감하는 성과를 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선 레임덕을 최대한 미룰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을 획득했다.

김= 수치상 의회 지형에서 압도적 다수가 된 것은 맞다. 하지만 한국의 의회정치 구조를 봤을 때 수치를 넘어서 실제 판을 좌우할 수 있는 압도적 힘을 의미하느냐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180석은 힘이라기보다는 기회를 부여 받았다고 보는 게 맞다. 오히려 양보하고 타협해 합의를 이뤄내는 그런 지렛대라 할 수 있다.

김호기 교수= 민주당 내부에서도 강경파는 일관된 개혁에 방점을 둘 것이고, 온건파들은 유연한 협치를 강조할 것 같다. 문제는 이를 잘 결합할 수 있는 성숙한 정치력이 요구된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박=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새롭게 구성되는 지도부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도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하고 내부 강경파 및 온건파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중심을 제대로 잡아 나가야 할 것이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가 2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21대 총선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박명호 동국대 교수가 2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21대 총선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김호기 교수= 이번 선거 결과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가 중도의 약화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체로 보수와 중도 진보 비율이 3대 4대 3으로 나오지만 막상 선거 결과를 보면 보수와 진보로의 쏠림 현상이 강했다.

박= 제도 효과 자체가 근본적으로 그런 것도 있지만 이번에는 특히 진영 대결 양상이 심해진 영향도 있다. 대통령제 국가라는 틀 안에서 당분간 이런 현상이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의 일정표대로라면 2022년에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가 있다. 대선에서 이기는 쪽이 지방선거까지 이길 가능성이 더 크다는 얘기다. 진영 간 양극화는 쏠림 현상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중도가 사라졌다고 하는 것은 좀 성급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구조적으로 한국사회의 분단체제 구조 하에서 보수나 진보가 아닌 영역은 늘 존재해 왔다. 이번 선거의 쏠림 현상은 코로나19 사태라는 정세적 효과가 컸다고 본다. 중도층은 정세 상황에 따라 또 다시 갈릴 수 있다. 오히려 언제든 제3지대에 대한 강렬한 희구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

김호기 교수= 최근 두드러진 정치 현상 중 하나가 강경 지지층들이다. 한쪽에 태극기부대가, 다른 한쪽에 ‘친문(친문재인) 열혈시민’이라 불리는 지지층이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조지타운대 제이슨 브레넌 교수는 그의 저서 ‘민주주의에 반대한다(Against Democracy)’에서 유권자 그룹을 정치에 무관심한 ‘호빗’, 정치적 수준이 높은 ‘벌컨’, 그리고 자신의 정치 성향에 맞춰 정보를 받아들이고 반대 의견을 부정하는 ‘훌리건’으로 나눴다. 이 훌리건 그룹에 속하는 정치세력의 명암이 이번에도 나타났다. 이에 대해 어떻게 봐야 하나.

박= 이번 선거 결과로 일단 보수 진영의 태극기부대는 축소됐다고 본다. 심판 받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이들이 내세울 수 있는 명분도 잃었다. 이에 반해 여권 내 강경 그룹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현실적인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이 부분과 관련해 여권 내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여권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김= 표면적 층위에서는 강성 지지 집단이 정치판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투표율이 많이 올랐다. 일반 유권자들까지 포함한 심층까지 들여다 보면 강성 지지층 마음대로만 할 수 없는 구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반 유권자들이 강성 지지층에 이끌려 나간 게 아니고 여러 정세 상황을 고려해 주도적 판단으로 선거에 나섰다고 분석할 수 있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가 2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21대 총선 결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김윤철 경희대 교수가 2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21대 총선 결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김호기 교수= 이번 선거 결과 중 주목할 것이 소백산맥 이남과 이북의 결과가 상당히 달랐다는 것이다. 특히 이남의 영ㆍ호남에서 지역주의가 강화된 양태가 나타났다. 의석수만으로 보면 지역주의가 다시 공고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의석수로만 보면 영호남 양극화가 확실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득표율을 보면 내용적으로 영남에서 지역주의가 약화되고 있는 흐름도 분명 감지된다. 호남의 경우 영남의 지역주의와 성격이 다르다. 전략적 지역주의 아닌가 싶다. 즉 호남은 소수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특정 정치세력의 지지 기반이 돼야 한다는 공통된 합의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김= 이번에 나타난 영호남 지역주의는 그간의 모습과 성격이 달라졌다. 대구ㆍ경북(TK)의 경우 코로나19 사태로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황에서 이뤄진 지역주의 정치의 끝물 현상으로 보인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의 패배 등이 상징적으로 지역주의가 강하다는 인상을 느끼게 하는 것이지 크게 보면 영호남 균열로 보기까지 어려운 상황이다.

김호기 교수= 이번 선거에서 청년과 여성의 정치 참여는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여성의 국회 진출 비중이 높아져야 하는 건 시대적 과제다. 우리 사회 일련의 흐름을 보면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까.

김= 이번 선거 결과도 ‘대한민국 정당은 성공한 아저씨들을 위한 곳’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줬다. 각 정당 내부적으로 청년이나 여성 정치인을 육성하는 시스템이 취약하다는 점도 또 다시 확인됐다.

박= 권고 조항으로 돼 있는 정당의 여성 추천 비율을 강제 조항으로 만드는 게 여성계의 숙원이지만 논란이 뒤따를 수 있다. 청년의 경우 젊다는 것 외에 다른 게 잘 보이지 않았다. 각 정당들이 흔치 않은 스토리를 찾아 경쟁하는 식으로 가다 보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할당제 같은 제도적 처방이 아니라 문화 자체가 달라져야 하는 부분이다.

김호기 교수= 사회학자 시각에서 이번 선거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두 가지다. 경제 문제부터 보면 단기적으로 경제위기 극복과 중장기적으로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국민 생명 보호와 안전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박= 코로나19 사태와 선거 정국을 거치면서 그 밑바닥에 있는 공동체라는 존재를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 안에서 개인의 자유와 시민으로서의 덕성이라는 부분을 같이 생각하게 된 것이다. 구조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여태까지 드물었던 경험이라고 보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공동체의 복원이나 회복과 같은 측면들이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어떤 전제가 되지 않을까 전망한다.

김= 이번 선거 이후 흐르는 시대정신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와 국가다움에 대한 것이었다고 본다. 공동체적 배려라든가 시민간 연대협력이 강조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의사 결정을 하는 데 있어 거버넌스가 잘 구축되는 게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권력 격차도 해소돼야 한다.

정리=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김예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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