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마지막 소신(所信)’이라고 하면 자칫 퇴임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다. 하지만 여기서 쓴 ‘마지막’이라는 형용사는 직책상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정도의 의미다. 홍 부총리가 요즘 긴급 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싸고 여권과 이례적인 갈등을 노출하고 있다. 재난지원금을 4인 가족 기준 100만원으로 책정해 전 국민에게 나눠 주자는 더불어민주당의 요구에 반대 입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은 것이다.
□ 당초 정부안은 소득 하위 70% 이하 1,478만가구에 대해 40만~1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주택 등 수급자의 실제 재산 반영 여부와 방법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빚어졌고, 그에 따른 지급 지연 우려가 대두됐다. 아울러 총선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이 앞다퉈 ‘무차별 지원’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민주당도 전 국민 지급을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홍 부총리는 “(정부의 70% 지원 방안은) 지원 필요성, 효과성, 형평성, 제약성 등을 종합 검토해 결정한 사안”이라며 전 국민 지급에 대놓고 반대했다.
□ 민주당의 압도적 총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홍 부총리의 ‘항명’이 계속되자 당의 압력도 거세졌다. 급기야 이근형 전 전략기획위원장은 라디오에 출연해 “전 국민에 주느냐, 70%에 주느냐는 논란은 3조원 정도 차이가 나는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인데, 기재부가 70% 지급을 고집한다는 것은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더불어시민당 김홍걸 당선인은 “기재부가 걱정하는 게 재정건전성인지 자신들의 기득권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까지 했다.
□ 그동안 ‘정권의 예스맨’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왔던 홍 부총리지만, 재정 문제에서는 달랐다. 이미 총선 전엔 추경안을 대폭 증액하라는 당의 요구를 거부해 이해찬 대표로부터 “물러나라고 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하지만 홍 부총리의 저항을 ‘기재부 정치’로 보는 건 지나치다. 헌법 57조는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지출 예산을 증액할 수 없다’고 돼 있다.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재정 남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따라서 홍 부총리는 요즘 헌법 취지에 따라 기재부가 재정건전성의 최후 보루가 돼야 한다는 물러설 수 없는 소신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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