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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뉴구세요?] ‘길치’ 이낙연의 길찾기 “스스로 길을 만들 겁니다”

입력
2020.04.24 08:00
수정
2020.04.2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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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전문가’ 이제이 전 연설비서관이 본 이낙연 ②

DJ 역사의식·盧 돌파력 배우고…文과는 끈끈한 파트너십 쌓아

“지역 통합·국격향상·문화소양 갖춘 지도자 향해나갈 것”

누가 이낙연일까? 광주제일고교 시절의 이낙연(둘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 전 국무총리와 친구들. 삼인 제공
누가 이낙연일까? 광주제일고교 시절의 이낙연(둘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 전 국무총리와 친구들. 삼인 제공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줄곧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압도적 1위를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도대체 그는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강점을 지니고 있기에 대중들이 그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요.

이 물음에 답을 얻기 위해 최근 책 ‘어록으로 본 이낙연’(삼인)을 펴낸 이제이 작가(전 국무총리실 소통메시지 팀장·연설비서관)를 만났습니다. 그는 2년 7개월 동안 이 전 총리의 연설문을 써왔는데요.

4·15 총선이 끝난 직후인 16일 오후, 종로 자하문로의 ‘역사책방’에서 차담을 나눴습니다. 이낙연의 정치 언어를 살펴본 첫 편에 이어 두 번째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이번엔 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관련기사☞ “실종된 정치언어 품격 되살렸다” 이낙연의 말과 글

◇이낙연 삶의 원동력은 ‘책임감’과 ‘부채의식’

책 ‘어록으로 본 이낙연’(삼인)을 펴낸 이제이 작가(전 국무총리 연설비서관). 배우한 기자
책 ‘어록으로 본 이낙연’(삼인)을 펴낸 이제이 작가(전 국무총리 연설비서관). 배우한 기자

-책에 이 전 총리가 10대 때부터 일기장에 “내 몫으로 한 방울의 피도 남기지 않겠다”고 썼다고 나와있는데 치열하면서도 진지한 삶을 살아 왔구나 하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나 싶죠? 하하. 끊임없이 공부해요. 10대부터 대학생, 기자, 국회의원, 도지사, 총리, 다시 5선 국회의원이 된 지금까지 한결 같죠. 전남지사 시절에도 매주 토요일 지인들을 만나 경제 공부를 했고, 국무총리가 된 뒤에도 책을 계속 읽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소통하고, 토론 모임에 참여했어요. 한 경제계 인사는 ‘(이 전 총리의) 학습 능력이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는 것 같다’고 표현했어요. 새로 알게 된 것을 곧바로 다른 것에 적용해 질문을 던지니까요. 그리고 그 지식을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상상해요. 총선이 끝났으니 이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가져올 변화와 그 대응에 대해서 집중 연구를 할 겁니다.”

-도정, 국정을 살피면서도 끊임없이 공부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공부하는 것도 그렇고,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그렇고 끝까지 치열한데 이걸 두고 ‘정성’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전 총리는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는지에 따라 문제가 어떻게 될지 판가름 난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단지 최선을 다한다고 표현하기에는 아주 많이 부족할 정도로. 이 전 총리는 ‘온 힘을 다한다’ 또는 ‘몸부림친다’라고도 말했죠.”

서울대 입학식에서 아버지 고(故) 이두만(왼쪽 끝) 씨와 이낙연(가운데) 전 국무총리. 삼인 제공
서울대 입학식에서 아버지 고(故) 이두만(왼쪽 끝) 씨와 이낙연(가운데) 전 국무총리. 삼인 제공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7남매와 어머니 고(故) 진소임(앞줄 가운데) 씨. 삼인 제공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7남매와 어머니 고(故) 진소임(앞줄 가운데) 씨. 삼인 제공

-그렇게 치열하게 온 힘을 다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이 전 총리는 ‘책임’이라는 말을 참 많이 해요. 그의 삶을 한 단어로 설명하면 바로 책임이에요. 그의 광주일고와 서울대 법대 동기인 이임성 변호사는 이 책임이 ‘부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어요. 이 전 총리는 자신을 도와준 모든 사람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해요. 또 광주ㆍ전남이 자신을 길러줬다고 믿습니다. 일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로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신문 기자로서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못 했다는 것을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세월호 참사를 뼈아프게 여기는 것도 그런 부채의식의 연장선상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꼭 부채 의식만은 또 아닙니다. 치열한 삶의 연료가 되는 내밀한 힘이 있어요. ‘심지’ 입니다. 그게 보다 본질적인 거라고 봐요. 어머니가 바로 굳은 심지를 가진 분이셨고 이낙연 스스로도 평생 심지를 지켜왔어요.”

-이 전 총리가 ‘몸치’라면서요. 뜻밖인데요. 놀라운 발견아닌가요.

“책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한 가지 목표가 이 전 총리가 못하는 것을 찾는 거였어요. 이낙연의 빈틈찾기. 그래서 가족들로부터 ‘몸치’라고 들었을 때 정말 행복했답니다. 하하. 운동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구나 그때서야 알았죠. 할 줄 아는 운동이 ‘선거운동’ 밖에 없다고 한 게 진짜로구나. 한 가지 더, 이 전 총리는 ‘길치’이기도 합니다. 길치라는 걸 알려주면서 이 전 총리의 지인은 ‘길을 못 찾으니 길을 만들어 가겠네’라고도 하더라고요.”

민주당 당원으로서 권력에 대한 저항 정신을 가르치고 원칙을 강조했던 아버지와 새벽부터 왕복 5㎞ 거리를 오가며 채소를 팔아 7남매를 키웠던 어머니. 어린 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반드시 광주 중학교로 진학해야 한다’며 회초리 들어 공부를 시켰던, 낯선 유학 생활 중 제자의 어려운 가정 형편을 알고는 때때로 고기를 먹여줬던 은사들. 이낙연의 역사가 이낙연 만의 역사가 아닌 또 다른 이유일 겁니다.

◇승리하고도 ‘반성회’를 여는 까닭은

4ㆍ15 총선 당일 국회 의원회관의 더불어민주당 개표상황실에서 상임선대위원장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출구조사 결과 발표에 반응을 자제하라는 손짓을 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4ㆍ15 총선 당일 국회 의원회관의 더불어민주당 개표상황실에서 상임선대위원장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출구조사 결과 발표에 반응을 자제하라는 손짓을 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민주당이 180석을 얻으며 압도적 승리를 거둔 4ㆍ15 총선에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받았던 장면이 있었죠. 지상파 방송 3사가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한 그 순간 이 전 총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상황실에 모였던 당 지도부, 후보자, 관계자들이 발표와 동시에 자동 반사적으로 박수를 치거나 탄성을 터뜨렸는데요. 서울 종로 후보이자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이 전 총리는 동요하지 않고 즉시 두 팔을 벌려 자제하라는 신호를 줍니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죠. “출구조사 결과는 어디까지나 출구조사 결과일 뿐입니다.”

-종로에서 크게 이겼지만 이 전 총리는 “세월호 참사 6주기이기도 하니 환호와 박수는 자제해달라”라고 했는데요.

“이 전 총리는 평소 일본 프로야구 고(故) 노무라 가쓰야(野村克也) 전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요. 노무라 감독은 경기에서 이긴 날 저녁에 ‘반성회’를 한다고 합니다. 승리에 도취하기보다는 잘못한 점, 고칠 부분이 없을지 돌아보는 거죠. 전남지사 당선 때도 압도적으로 이겼지만 웃지 않았다고 하잖아요. 이번 총선 때도 충분히 기뻐할 만한데 그러질 않았습니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늘 중심을 잡으려 하는 부분이 안정, 품위, 절제 같은 단어들로 설명이 되는 거겠죠.”

-항상 큰 목표와 세부 실천 사항을 동시에 추구한다고 들었습니다.

“책에 나온 ‘대관소찰(大觀小察)’이 그 뜻입니다. 크게 멀리 보지만 세세한 것도 잊지 않으려 합니다. 특히 소외 되는 사람이 없는 지를 끝까지 따져봅니다. 지금은 코로나19 극복이라는 큰 과제가 있고,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먼저 생각하는 거죠. 총선 승리보다 책임을 통감하고 있을 겁니다. 총선 결과를 두고도 ‘무겁고 무서운 책임감을 느낍니다’라고 말했죠.”

-이 전 총리에 대한 설명에서 소외된 사람, 약자에 대한 고려는 빠지지 않네요.

“(인터뷰 중 역사책방 벽에 걸려있는 공재 윤두서의 그림 ‘자화상’을 가리키며)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면 그 눈이 역사와 자신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이낙연도 윤두서와 같은 눈빛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시대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합니다. 윤두서는 그 시대에 한번도 주목 받지 못 했던 여성, 노비 등 소외된 사람들을 화폭에 담았고, 특히 땀내나는 노동의 현장을 그려냈어요. 이 전 총리도 시대가 소외시킬 수 있는 인물들을 ‘그림자’라고 표현하면서 ‘우리 사회의 명암을 살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림자로 그대로 남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국민에겐 따뜻하지만 함께 일하는 직원에겐 엄격한 ‘이테일’

이낙연 전 국무총리 수첩에 빼곡히 적힌 산불 대책 관련 메모.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페이스북
이낙연 전 국무총리 수첩에 빼곡히 적힌 산불 대책 관련 메모.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페이스북

-이 전 총리는 도지사 시절 ‘이 주사’, 총리 시절에는 ‘이테일(이낙연+디테일)’로 불렸다고 하는데요. 직원들은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일할 때 그의 철두철미함에 아랫사람들이 따라가지를 못 하죠. 연설팀에서는 ‘파란펜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모든 일은 디테일에서 승부가 결정되잖아요.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는 식으로 할 수도 있지만 일은 성과가 있어야 하니 마지막까지 살피는 겁니다. 총리의 이런 방식은 특히 경제인들에게 호응을 얻었어요. 간담회에서 나온 질문에 대해 총리가 답변하고 담당 직원들이 추가 설명에 이어 후속 조치까지 하니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죠. 그러면서도 자기 생각에 갇힐까 봐 늘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귀담아 들으려 해요. 연설문 쓸 때도 기획 의도를 설명하면 자신이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은 받아들입니다.”

-그런 치밀함이 도리어 독이 될 수 있다며 걱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소한 걸 따지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이낙연식 질문은 구체적이고 날카로워요. 대충 알아서는 대답을 제대로 못해요. 긴장도는 엄청납니다. 아랫사람이 무지 힘든 건 맞아요. 직원들에게도 어느 정도까지는 꼼꼼하게 지적하지만 그 사람이 일 처리를 맡길 만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면 맡겨둡니다. 한 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믿고요.”

-국민에겐 인자한 지도자의 모습으로 비춰지는데 직원들에겐 어떤 상사인가요

“직원들에게 매우 엄격해요. 국민들을 위해서는 느슨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권위적이지는 않아요. 무심해 보일 수도 있는데 꼭 그렇지는 않아요. 그래서 저는 일하면서 ‘저 분이 마음을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어요. 평소에 지나가는 듯 ‘이 사람도 고향이 거기야’, ‘부인은 몸 좀 괜찮아?’ 같은 말을 하시는데요. 직원들 고향, 가정사 등을 꼼꼼하게 파악하고 있어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드러내지 않는 것 같아요. 이 전 총리를 오랫동안 보좌해 온 양재원 보좌관의 책 ‘이낙연은 넥타이를 전날 밤에 고른다’(북콤마)에 그런 면모가 잘 나와있어요. 전남도청에서는 직원들과 막걸리를 마시는 ‘섞어번개팅’을 열기도 했는데요. 비록 일이 많아 힘들더라도 밖에서 국민들로부터 ‘이낙연 총리와 함께 일하다니 부럽다’, ‘총리님 정말 잘 하고 계시다’ 평가를 들으면 보람을 많이 느끼죠.”

이 전 총리는 ‘이 주사’, ‘이테일’, ‘파란펜 선생님’ 외에도 초인적인 수준으로 일한다는 뜻을 담은 ‘AI 총리’, 직접 경험한 현장을 바탕으로 쓴 국정감사 보고서 때문에 붙여진 ‘르포 전문 의원’ 등 별명이 많은데요. 숱한 별명 중 이 전 총리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여니’라고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국민이 지어준 것이기 때문이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그리고 이낙연

동아일보 기자 시절의 이낙연 전 국무총리. 삼인 제공
동아일보 기자 시절의 이낙연 전 국무총리. 삼인 제공
2004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민주당 국회의원 시절 이낙연 전 국무총리. 김주성 기자
2004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민주당 국회의원 시절 이낙연 전 국무총리. 김주성 기자

1971년 어느 날 장충단 공원에서 열린 DJ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모인 100만 인파 중에는 서울대 법대 학생이었던 이낙연이 있었습니다. DJ와 이낙연의 첫 만남.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DJ는 청년 이낙연의 심장을 뛰게 했고, 이후 이 전 총리는 DJ의 연설을 좇아 다니며 들었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직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납니다. 평화민주당 대선 후보와 전담 기자로요. 이 전 총리가 정계에 입문하게 된 것도 DJ의 계속된 권유로 이뤄졌다고 해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정치권 진출 대신 도쿄 특파원을 선택했는데요.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또 한 번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고향인 전남 함평ㆍ영광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습니다.

-이 전 총리에게 DJ는 어떤 의미일까요.

“제가 볼 때 DJ는 이 전 총리에게 아버지 같은 사람이에요. 피로 만난 아버지가 있다면 DJ는 철학과 가슴으로 만난 아버지라 할까요. DJ가 보여 준 호남 특유의 해학과 풍류, 역사 의식과 저항 정신까지 모든 것이 이낙연이란 인물 안에 있는 것 같아요. 그 분 같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도 보여요. DJ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늘 새기며 균형을 맞추려 하죠. DJ의 또 다른 명언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도 마찬가지예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듯 보이지만 이 전 총리 개인과 대한민국도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DJ와 이 전 총리의 관계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을까요.

“DJ가 이 전 총리의 아버지에게 “이낙연 기자는 한결 같은 사람입니다”라고 칭찬을 한 적이 있다고 해요. 이 전 총리 아버지는 그 칭찬을 당신의 최대 자랑으로 여기셨다고 하고요. 이 전 총리는 그 칭찬 덕에 아버지께 큰 효도를 했다고 했죠. DJ가 식사 중 당신 매운탕 속 생선을 건져 ‘좀 더 먹게’ 하며 이 전 총리의 그릇에 떠주기도 할 정도로 끈끈한 관계였고요. 본인 자신도 그런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정치에 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시민들 중에도 이 전 총리를 두고 ‘아버지 같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가부장적 권위가 아닌 부성애적 따뜻함이요.”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방송녹화를 준비하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모습. 연합뉴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방송녹화를 준비하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모습. 연합뉴스

이 전 총리는 16대 대선에서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대변인을 맡았습니다. 연설문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꼼꼼하게 따져 보는 노 전 대통령이 이 전 총리가 쓴 취임사를 한 번에 ‘오케이’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죠. 그러나 이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 측의 청와대 입성 제안을 고사, 신당 열린우리당에 합류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도 마다하고 새천년민주당에 남았습니다. 다만 훗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새천년민주당 의원 중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전 총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많이 좋아하지만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을까요. 두 분이 철학은 공유하면서도 현실을 맞이하는 방식이 조금은 달랐던 게 아닌가 해요. 노 전 대통령의 대변인이었고 대선까지 함께했지만 계속 거리 조절을 해왔던 것 같고요. 이 전 총리는 당을 옮기지 않고 끝까지 민주당을 지켰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열린우리당 시절의 얘기가 여기 얽혀 있는 거지요.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함께 할 수 없지만 그가 가려는 길을 존중하고 우리는 역사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어요.”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이낙연 전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고영권 기자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이낙연 전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고영권 기자

노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대통령비서실에서 그의 곁을 지켰던 문재인 대통령은 당론을 거부하고 반대 표를 던졌던 이 전 총리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2002년 노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만난 두 사람은 10년 뒤인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선대위에서 다시 만났고, 5년 뒤 대통령과 총리로서 함께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처음으로 추가경정예산과 관련해 총리에게 국회 시정연설을 하도록 하고, 대통령 전용기를 내주며 정상외교 일부를 책임 지도록 하는 등 이 전 총리를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줬죠.

-문 대통령과 이 전 총리 사이는 어땠나요. 장관들 사이에 ‘문 대통령은 인자한 어머니, 이 전 총리는 엄한 아버지’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는데요. 책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바위와 보’라고 표현하기도 했어요.

“문 대통령과 이 전 총리는 결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늘 겸손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요. 문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자신의 책에 과거 이 전 총리가 썼던 ‘태도 보수’라는 말을 인용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구했다고 하는데요. 그 일이 두 사람이 처음으로 개인적인 인연을 만들게 된 계기였다고 합니다. 문 대통령과 이 총리는 기존에는 없던 태도와 스타일로 권력의 성격을 바꿨다고 봐요. 무엇보다 두 사람의 파트너십이 있었기에 가능했고요. 서로 다정한 친구처럼 보이면서도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존경하죠.”

-‘문재인 언어’와 ‘이낙연 언어’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두 사람의 언어는 다른 것 같아요. 문 대통령이 논리를 바탕으로 시적이고 감성적이라면, 이 전 총리는 굵직한 단문과 팩트를 기반으로 한 기자의 글쓰기죠. 하지만 문재인과 이낙연의 말과 글에 담긴 온도는 따뜻해요. 이 온기에 국민이 감동합니다. 문 대통령은 총선 직후 낸 메시지에서도 세월호 참사를 언급했는데요. 왜곡되고 얼룩진 역사를 제대로 세우고, 희생되고 아픔을 겪은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껴안아 주죠. 2017년 대통령 취임 직후 문 대통령의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사는 역사 속에 있던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냈어요. 이듬해 이 전 총리의 5ㆍ18 기념사도 같은 맥락에서 큰 관심을 받았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 대통령과 이 전 총리의 관계성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김대중의 역사의식과 만났고, 노무현에게서는 정치적 돌파력을 배웠고, 문재인과는 손을 잡고 소리 없이 변화를 만들고 있다. 그렇지 않을까요.”

◇또 다른 항해 준비… ‘이낙연 표 정치’ 시험대 서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자료를 보거나 독서를 하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모습. 연합뉴스
차량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자료를 보거나 독서를 하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모습. 연합뉴스

이 전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고향이자 정치적 뿌리인 전남을 뒤로 하고 종로에 나섰죠.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를 상대로 18%포인트의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습니다. 4대문 안에 위치해 서울, 나아가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지로도 의미가 있는 지역인데요. 종로 출신의 국회의원 중에서는 윤보선,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역대 3명의 대통령이 탄생했죠. 역사적, 정치적으로 유서가 깊은 종로에서 또 다시 항해를 준비하고 있는 이 전 총리. 이낙연은 어떤 길을 만들어 갈까요.

-이 전 총리가 종로에 출사표를 던진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서울 종로는 ‘정치 1번지’로 주목 받는 곳이고 많은 대권주자들이 거친 지역으로 상징성도 큽니다. 종로는 오랜 역사의 흐름을 지니고 있는 현장이죠. 전쟁의 상처를 품고 있고, 광장의 시대를 연 민주주의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이야기 나눌 장소로 역사책방을 선택한 이유도 같은 지점에서였는데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역사의 중요한 사건이 이 지역에 퇴적층처럼 존재하고 있다는 겁니다. 역사 위에 서 있는 거죠.”

-이 전 총리가 종로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종로는 대한민국 역사를 끌어온 힘이 깃들어있는 곳이에요. 이 전 총리가 자신이 가진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그 동안 해왔던 지식, 경험, 시행착오까지 모든 것들을 융합해 펼쳐볼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이 전 총리가 생각하는 이 시대의 대한민국 지도자에게 필요한 자질이 있을까요.

“첫째는 통합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 전 총리는 호남 출신이죠. ‘외연 확장에 한계를 갖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제 그런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어요. 지역주의를 벗어나 균형과 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거죠. 대권 도전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DJ가 호남 대권 주자였다면 이 전 총리는 알파가 더해진 방향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요. 호남 출신이 더는 정치적 마이너스가 되는 시대는 아니죠. 두 번째는 대한민국 위상을 글로벌 시대에 맞게 격상시켜 갈 지도자 입니다. 평창동계올림픽 때 한 번 느꼈지만,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대한민국의 기술은 물론이고 의식 수준도 많이 성숙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또렷이 알게 됐죠. 세계와 함께하는 대한민국, 그게 이 전 총리의 머릿속에 있다고 믿어요. 세 번째는 문화적인 부분인데요.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죠. 한국 문화가 갖고 있는 힘을 국제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춘 지도자. 대한민국 역사의 발전 속에 이제는 이런 지도자가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보는 것 같아요.”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2019년 12월 태풍 ‘미탁’ 피해지역인 강원 삼척 신남마을을 찾아 주민들과 막걸리잔을 기울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2019년 12월 태풍 ‘미탁’ 피해지역인 강원 삼척 신남마을을 찾아 주민들과 막걸리잔을 기울이고 있다. 연합뉴스

-마지막 장 제목이 ‘큰 길로 나아가다’인데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대권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경력과 훈련해온 것을 한층 더 종합적으로 발휘해 정치의 질을 높이는 과제를 담당하게 되지 않을까를 표현한 거예요. 시인들이 ‘내가 시를 썼다’고 하지 않고 종종 ‘시가 내게 왔다’고 말하듯이, 이 전 총리 본인이 큰 길로 나아간다기 보다는 ‘시대와 역사가 이낙연에게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만남의 접합점에서 하나의 변화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큰 길이겠지요.”

-일각에서는 정치 경력에 비해 ‘자기 세력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합니다.

“이 전 총리는 초선 국회의원 때부터 그 자리에서 조용히, 꾸준히 일 해왔고 그러다 보니 이제 역사와 시대가 이낙연을 알아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정말 정치적으로 자기 세력이 없는지는 따져봐야 하겠지만, 이제 과거 문법을 벗어나 정치 문화도 달라져야 할 것 같아요. 기존의 정치인과는 조금 다르게 봐야 해요. 저는 ‘국민들이 다 세력이다’라고 하는데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변화를 원하는 마음, 열망이 모이면 그게 바로 세력이 되는 거 아닐까요. 좁은 정파 개념은 이제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유력한 대선 예비 후보로서 대중은 ‘이낙연 만의 비전’을 궁금해 합니다.

“이 전 총리의 숙제죠. 평소 신중한 성격이라 자기 생각이 어느 정도 완성되지 않으면 꺼내지 않아요. 최상의 것을 구상해 발표하는 시점이 있을 텐데 지금은 아닌 거죠. 연설도 그렇고 항상 최근 현안을 꼼꼼히 살피거든요. 비전을 만드는 작업도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에서의 최선이 무엇일까 다 파악해서 가장 좋은 시점에 국민에게 비전을 알려주리라 봅니다.”

-책에서 이 전 총리는 끊임없이 다음을 준비하고 자신을 변화시켜 나간다고 표현했죠. 이 전 총리의 다음 변화는 무엇이 될까요.

“이 전 총리는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어느 지점에 그대로 안주하거나 정박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 사람이에요. 낡은 잎이 떨어진 뒤에 새싹이 나오는 게 아니라 새싹이 나오는 힘에 밀려 낡은 잎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어떤 형태든 변화를 추구하는 동력들을 찾아내서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창출해 낼 거라고 생각해요. 정치인으로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몸집이 커졌어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을 겪으며 얻은 것들을 바탕에 두고 ‘이낙연표 정치’를 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중요한 때입니다. 그건 당연히 국민을 위해서겠지요. 앞서 이 전 총리가 길치라는 지인의 말을 전했죠. 시인 정호승의 시 ‘봄길’에 ‘스스로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구절처럼 자신의 정치적, 역사적 몸집을 키워 스스로 길이 되면서 국민과 함께 갈 것이라 봅니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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