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A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매출에 큰 타격을 받은 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긴급경영안정자금 대출 신청을 했다. 그는 “월 1,500만원씩 들어가는 고정비를 감당할 수 없어 대출 신청은 했지만 대출금이 들어와도 사실 걱정”이라고 했다. 상인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빚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A씨는 “코로나19로 모두 힘든데 우리만 도와달라고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소상공인에게는 현금 지원이 너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코로나 보릿고개’를 겪고 있는 소상공인을 위해 현금 지원 카드를 꺼냈다. 박 시장은 이어 중앙정부에도 현금 지원 정책을 건의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재난지원금 지급 논의 공론화에 직접 불을 지핀 모양새다. 소상공인에 대한 정부, 지자체의 지원 방식이 융자와 같은 간접지원 형태에서 직접지원으로 바뀌는 계기가 될 지 주목된다.
박 시장은 23일 서울시 소상공인에게 두 달에 걸쳐 14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소상공인의 72%에 해당하는 41만개 업체를 지원하는데 필요한 예산 5,740억원은 올해 예산 일부의 지출을 조정해 확보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재난지원금 지급을 요청했던 소상공인들은 박 시장의 결정을 반기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최근 진행한 4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상공인들은 현재 가장 필요한 정부, 지자체의 지원 정책으로 ‘별도의 소상공인 재난수당 지원’(37.9%)을 꼽았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될 경우 70% 이상의 소상공인이 폐업을 고려할 정도로 현금이 말라붙어 벼랑 끝에 몰렸기 때문이다.
광역자치단체 중에서는 서울시 말고도 부산시가 연 매출 3억원 이하인 소상공인에게 민생지원금 1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기초자치단체 가운데도 경기 화성시, 강원 강릉시, 경북 청송군 등이 매출이 5~10% 감소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업체당 50~70만원씩을 지원했다. 그러나 일반 소상공인에게 2개월 간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건 첫 사례라는 게 서울시 설명이다.
외국도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을 위한 다양한 현금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13일 발표한 ‘코로나19 대응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사례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은 프리랜서ㆍ자영업자 및 5인 이하 사업자에 최대 9,000유로(1,200만원), 6~10인 사업자에게는 1만5,000유로를 지급했다. 독일의 경우 기금을 선지급하되 나중에 현금흐름이 어려워졌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프랑스도 전년 매출 100만유로(13억원)이하의 프리랜서ㆍ자영업자, 10인 이하 사업자 중 코로나19로 영업을 중지하거나 매출액이 전년 대비 절반 이상 감소한 경우 1,500~2,000유로를 지원했다.
이 참에 우리나라도 코로나19와 같은 긴급재난 사태가 닥쳤을 때 소상공인과 같은 경제적 약자를 신속히 지원할 수 있는 기준과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소공연 차남수 연구실장은 “소상공인들이 어려워지면 직원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고 해고한 직원을 다시 고용하기까지 오래 걸려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며 “코로나19 사태는 국가 재난이 경제적 취약계층인 소상공인들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직접적이며 경제 영역 전체의 붕괴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도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이 닥쳤을 때 소상공인들을 국가에서 긴급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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