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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판결은 왜 가해자 편인 것처럼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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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판결은 왜 가해자 편인 것처럼 느껴질까

입력
2020.04.23 11:30
수정
2020.04.23 18:4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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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성 착취 강력처벌 촉구 시위 운영진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관련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n번방 성 착취 강력처벌 촉구 시위 운영진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관련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근대 형법의 근간은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그러나 호주의 재판연구원인 브리 리는, 성범죄 사건에 있어서만큼은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란껍질만큼 얇은 두개골을 가진 사람의 머리를 한 대 쳤을 뿐인데 피해자가 사망했다면 가해자는 피해자의 사망에 대한 책임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영미법상의 법률 원칙이다.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

브리 리 지음ㆍ송예슬 옮김

카라칼 발행ㆍ504쪽ㆍ1만8,500원

퀸즐랜드 지방법원의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하며 각종 성범죄 사건을 마주한 리는 성범죄 판결이 가해자에게는 너그럽고 피해자에게는 엄격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성범죄 특성상 물적 증거가 남기 쉽지 않고 피해자의 고통이 지속적이고 연속적인데, 법이 이 같은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은 철저하게 피해자의 관점에서 다시 쓴 성범죄 판결이다. 자신 역시 성폭력 피해 생존자이기도 한 리는 피해자의 입장에 깊게 이입하며, 사법 정의가 가 닿지 못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책은 리가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만난 불공정한 성범죄 판결을 분석한 1부와, 리 자신이 직접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로 법정에 선 경험을 서술한 2부로 나뉜다. 호주의 사례를 다루지만 한국의 현실이 겹쳐 읽힐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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