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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값진 선생님의 한마디, 온라인이면 어때!

입력
2020.04.24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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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로 학교는 텅 비어있지만, 나의 학교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학생들 없이 학생들을 위한 공간을 계속 디자인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공간’이기에, 학생, 선생님, 학부모와 함께 토론하는 일이 필수다. 새학기가 되면서 학생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선생님은 종종 만난다. 오늘은 미술 선생님을 만나 미술실을 만드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마스크를 쓴 채로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첫눈에도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겠구나라는 느낌이 왔다. 선한 눈매, 깨끗한 피부, 갸름한 얼굴형, 밝고 건강한 목소리 등등 좋은 인상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선생님의 요구는 간단했다. 깨끗한 공간과 균일한 빛! 그림을 그리기에 필수적인 요소만을 이야기한 것이다. 하긴 미술실에 그것 말고 뭐가 더 필요할까!

문득 나의 미술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나는 미술시간만큼은 다른 수업시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집중하는 아이였다. 붓이나 연필만 쥐어주면 촘촘하게 선을 그으며 표현하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미술학원에는 가보지도 않고 누나들이 쓰던 붓과 연필로 그리던 때였다. 꼼꼼하게 그리는 편이라 또래들 중에서는 눈에 띄었지만, 제대로 잘 배운 선배들한테는 넘을 수 없는 벽을 느꼈다. 나는 천재는 아니었다.

“어두운 곳을 좀 더 진하게 표현해 봐.” 몇 시간째 붓으로 여기저기 꼼꼼히 그렸지만, 내 그림의 미흡함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몰랐던 그때 미술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머리를 쾅 울리는 뭔가를 느꼈다. 나는 얼른 팔레트의 물감을 조금 진하게 만들어 어두운 곳을 조금씩 그려 나갔다. 그림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나무 밑 부분도 조심스럽게 칠해 보고 지붕 아래쪽에서 살짝 선을 넣어 봤다. 그러자 입체감이 살아나고 나무가 둥그렇게 펴졌다. 밝은 부분도 자연스럽게 더 살아났다. 빛에 의해 양감이 생기는 것이 무엇인지 그때 경험했던 것 같다.

학교 대표로 미술대회에 나가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미술대회에 나가면 30분 정도는 그려야 하는 대상을 찾아 돌아다닌다. 나무, 연못, 정자, 내가 그리고 싶은 대상과 구도가 보일 때까지 장소를 탐험한다. 빛을 표현하는 법을 깨닫고 나니 그릴 수 있는 대상이 많아졌다. 모든 것을 다 그리고 싶었다. 나무와 산을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표현하는 게 두렵기까지 했는데, 이제는 마음이 편해졌다. 나무를 그리려면 나무의 구조를 관찰해야 한다. 몸통과 나뭇가지, 잎사귀를 가까이서도 보고 멀리서도 본다. 나무에는 균형감과 비례감이 있다. 빛과 그림자는 나무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빛과 비례에 대한 자연스러운 공부시간이었다.

선생님의 한마디는 그 후로도 평생 귓가를 맴도는 말이 되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깨달았던 빛과 비례의 원리는 건축공부를 하면서도 도움이 되었다. 건물 형태가 빛에 의해 표현되는 모습을 상상하며 스케치를 할 때면 그 시절 미술 시간이 생각나곤 했다.

선생님도 학생도 온라인 수업이 처음이라 어색하다고 그런다. 사무실을 같이 쓰는 후배도 온라인으로 건축학과 설계 수업을 진행한다. 설계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격론도 하고 직접 지도도 해야 제 맛인데 모니터로 만나는 학생들이 아쉬워 보인다. 그나마 대학생들은 집중이라도 할 테지만 중학생들은 얼마나 집중할지 모를 일이다. 아까 그 미술 선생님처럼 인기 많은 선생님 수업은 잘 집중하려나? 의도치 않게 탄생한 온라인 수업이지만 실습의 비중이 줄어든 만큼 선생님의 말과 표현이 더 중요해졌다. 요즘 미술 수업은 온라인상에서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 그래도 학생 중 누군가는 멀리서 화면으로 들리는 선생님의 조언으로 인생이 바뀔지도 모른다. 그 한마디 말씀. 온라인이면 어때!!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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