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5 총선을 결산하는 일은 내게 두 장면으로 요약된다.
장면 하나, 투표가 끝난 15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더불어민주당 상황실. 초조한 표정으로 지상파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참석자들에게 연신 안내 방송이 전달된다. “차분한 태도를 유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공개된 것은 과반 의석은 물론 압승을 예고한 출구조사 결과. 곳곳에선 ‘나도 모르게’ 성격의 자동반사적인 박수가 터졌다. 이낙연 민주당 선대위원장은 곧바로 양손을 들고 자제를 청하는 손짓을 한다. 이 위원장은 이어 말한다. “어디까지나 출구조사 결과일 뿐입니다. 우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에 총력을 기울일 때입니다.”
장면 둘, ‘180석 압승’을 확정 지은 지 닷새 만인 20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 축하, 박수, 갈채, 환호, 격려가 오갈 자리지만 잔치는 없었다. 원로들의 고언만 이어졌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나섰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는 대한민국 70년 헌정 사상 가장 무거운 책임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및 경기 침체 전쟁, 세월호 참사 애도의 의미, 위성정당 꼼수 속에 과다 의석을 확보했다는 비판 등을 종합 고려한 자세였다. 유세 기간에도 내내 ‘노래하지 말 것’ ‘춤추지 말 것’ ‘막말하지 말 것’ ‘겸손할 것’을 외치던 민주당은 이렇게 시종 엄숙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압승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성공한 표정 관리’의 두 장면을 거듭 곱씹게 된 것은, 어쩌면 이 태도가 거의 모든 승부의 시작이자 끝이었다는 생각이 뇌리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미증유의 전염병 전쟁 속에 내던져진 유권자들의 본능은 무섭게 직감했을 터다. 내가 처한 작금의 고통을 더 무겁게 직시하는 쪽은 누구인가. 내가 느낀 공포를 더 피부로 느끼며 고심하는 쪽은 누구인가. 내가 가질 분노에 더 예민하고 적어도 눈치를 보는 쪽은 누구인가.
야당 측에 중저음의 무게감이 부족했다거나, 교양인 연기가 모자랐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 진지함이 잠시 잠깐일 뿐 자주 공개적 약속을 뒤엎고, 국회법을 초월하려 하며, 문제 해결 방법론에 대한 근본적 논의를 회피하고, 무(無)대책의 아스팔트 투쟁을 반복하는 세계를 제1야당은 부유했다. 이 세계에서 한 쪽만 시종 선보이는 신중한 태도는 곧장 양측의 ‘재난 관리 능력’의 상징으로 치환됐다.
권력의 무능 앞에 국민의 생명이 얼마나 취약한지 누구보다 뼈아프게 몸에 새긴 한국 시민들이 코로나19 국면을 맞아 가장 자주 되뇐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누가 가장 나의 공포에 귀 기울일 것인가. 누가 더 빠르게 현장으로 달려갈 것인가. 누가 더 책임과 역할의 가르마를 확실히 할 것인가. 누가 더 내 애환에 집중하고 이를 해결할 것인가. 감염병 방역과 날 선 시민 공포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쪽인가. 선거 몇 주 전 새 얼굴을 모셔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외치는 쪽인가. 답은 총선 결과가 여실히 보여준다.
이미지 정치는 단연 위험하다. 선하고 겸손하다고 국정이 원활한 건 아니다. 민생에 절실한 법안을 통과시킬 힘이 진정성이나 비장미(美)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전략으로라도 절박함을 연기할 눈치나 의지조차 없는 이들이 야당을 가득 메울 때, 유권자가 가용할 거의 유일한 잣대는 이 태도와 자세다. 이렇게 쌓인 태도가 공격적 국정운영과 만나야 결국 능력이 되고, 신뢰가 되고, 전부가 되기도 하는 탓이다.
총선 결과를 두고 한 여당 당선자는 말했다. 21대 국회에서만큼은 막말하지 않는 태도, 함부로 환호하지 않는 자세, 국민의 요구에 절박하게 호응하는 겸허 등은 모두 대전제로 가진 채 여야가 실력, 내용, 콘텐츠, 방향, 방법론으로 경쟁하는 정치를 하고 싶다고. 지금 야당이 가장 뼈 아파야 할 것은 줄어든 의석수가 아니라 이 순간에도 이렇게 비장한 이 ‘승자의 태도’ 일지 모른다.
김혜영 정치부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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