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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어느 전직 법원장의 부적절한 사건 수임

입력
2020.04.23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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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4년과 2015년 사법부를 발칵 뒤집은 ‘명동 사채왕’ 최진호씨 사건을 최근 다시 취재했다. 현직 판사에게 거액의 뒷돈을 준 희대의 법조비리 사건 장본인인 그의 사기도박 사건 1심이 5년 넘게 지연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다.

재판에 제출된 문건을 통해 최씨가 과세당국에 조세 소송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조세포탈 등 혐의로 2016년 징역 8년 확정판결을 받았는데, 이와 관련해 과세당국이 그에게 부과한 종합소득세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이었다.

이 사건을 살펴보던 중 최씨의 변호사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고법원장급 고위 법관 출신 S(62) 변호사가 최씨를 대리 중이었다. 당연히 불편한 관계일 거라 짐작했던 두 사람이 의뢰인과 변호사 관계로 결합할 줄은 몰랐다.

S 변호사는 최씨에게 수억원대 금품을 받은 최민호 판사 의혹이 폭로될 당시 최 판사가 속한 수원지법의 법원장이었다. 의혹 보도 직후 2014년 4월 수원지법은 최 판사의 해명을 토대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최 판사는 2015년 1월 긴급 체포됐고, 대법원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당시 S 법원장은 최 판사가 구속되고서야 징계를 청구했다. 그때 법원 주변에선 ‘제 식구 감싸기’를 하다 더 큰 사법불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말하자면 S 변호사는 불과 5년이 지난 뒤 자기 법원 존립을 뒤흔들었던 사채왕의 이익을 대리하고 있는 셈이다. S 변호사가 최씨 사건을 선뜻 수임한 경위를 이해할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이 사건 수임이 변호사법에 저촉된다거나 변호사단체 규정에 위반되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사법부 신뢰에 중대한 타격을 입히고 법관의 명예를 실추시킨 사채업자의 재산상 이익을 위해, 당시 문제 판사의 법원장이었던 이가 사건을 대리한다는 것은 부적절한 처신이 분명하다.

S 변호사는 지난해 2월 법복을 벗었다. 임기를 1년 남기고 돌연 떠나 4월 한 로펌 공동대표를 맡고, 5월 이 조세 소송의 위임장을 냈다. 입장을 묻는 질문에 S 변호사는 “아끼던 판사에게 불이익을 준 최씨라, 안 맡으려다가 지인 부탁으로 맡았다”고 해명했다. “형사사건과 관련 없고, 다툴 만한 사건”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와 관련해 정확하게 쓰라”며 문자 메시지로 연거푸 ‘평안하세요, 샬롬(히브리어로 ‘평안’을 의미)’이라고 보냈다.

30년 이상 법관을 지내고 대법관 후보까지 올랐던 퇴직 원로법관에게는 국민들이 바라는 기대 수준이란 게 있을 것이다. 과연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법원에 남은 ‘현직’들만의 몫인가. ‘샬롬’이라는 인사를 받았지만, 이 사건을 곱씹을수록 마음은 ‘평안’하지 못하다.

손현성 사회부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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