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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벨트를 가다] 도시 빈민이 될 위기에 놓인 케냐의 커피 농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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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벨트를 가다] 도시 빈민이 될 위기에 놓인 케냐의 커피 농가들

입력
2020.04.22 15:47
수정
2020.04.2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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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회> 개발에 밀려나는 케냐 커피 산업(하)

케냐 키암부에서 커피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중년의 여성은 앞날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커피 재배지가 점차 줄어들면서 농장의 일자리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최상기씨 제공
케냐 키암부에서 커피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중년의 여성은 앞날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커피 재배지가 점차 줄어들면서 농장의 일자리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최상기씨 제공

주거지 개발과 커피 재배가 공존하는 지역 키암부. 키암부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동북쪽 방향에 위치해 있다. 우리가 찾은 커피 밭은 케냐 최대 커피생산 업체인 사시니의 농장이었다. 나지막한 언덕에 커피나무가 보기 좋게 일렬로 늘어서 있다.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당히 넓은 면적이다. 널따란 농로를 기준으로 한쪽으로는 키가 좀 작지만 넓게 자라는 특징을 가진 루이루 11 품종이 재배되고 있었고, 다른 편으로는 키가 크면서 좁게 자라는 SL 변종들이 심어져 있었다. 모두 케냐 커피를 대표하는 토착 품종이다.

밭에는 중년의 여성들이 한창 가지치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열매가 잘 맺지 않는 가지를 잘라 열매가 많은 가지로 자양분이 집중되게 해주는 일이다. 작업을 하는 이들은 농장에서 일당을 받고 일하는 지역 주민들이다. 그들과 커피 농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대화의 주제는 일자리로 이어졌다. 수 십 년간 이 지역에서 일해온 여성은 개발로 커피 재배가 줄어들면서 일자리도 점점 사라진다고 탄식했다.

그에게 개발이라는 단어는 곧 삶의 터전을 잃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수십 년 커피 농사만 지어오던 토박이들에게 지역개발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던 커피 농장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들에게 다른 커피 생산 지역으로의 이전, 아니면 도시 빈민으로의 전락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들이 이런 흐름을 막을 방법은 거의 없다. 커피농장이 없어질 날이 좀 더 천천히 오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그렇다면 커피나무의 뿌리가 뽑히더라도 농장 주인은 크게 오른 땅값으로 부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키암부에는 사시니와 게텀비니, 타투 등 대형 플랜테이션 농장들이 많다. 이들 농장기업은 그 동안 인근지역의 농지들을 사들여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규모 농장주들은 이미 오래 전 그들의 농장을 외지인들에게 팔고, 그들에게 다시 토지를 임대하여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도시 근교 논밭들의 소유주가 대부분 외지인인 것과 비슷한 형편이다.

따라서 개발로 인한 토지 자산 가치의 상승은 이미 기업화 된 대형 플랜테이션 농장, 아니면 일찌감치 토지에 투자해온 소수 외부인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뿐, 토지를 잃은 소규모 임대 농장주들이나 실제로 커피를 재배하는 농민들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오히려 개발에 따른 두려움과 걱정으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인 것이다.

도시화는 커피 농장을 소유하고 있는 농민들에게 커피 밭을 쪼개 팔도록 압박을 가한다. 실제로 고령이 된 커피 재배 농민들은 자녀들에게 농장을 분할해서 상속해주지만 쪼개진 작은 면적의 밭은 커피 농장의 경제성을 잃어버린다. 게다가 젊은 세대들은 고되고 수익성이 적은 커피 농사를 꺼리고 노인들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 상속된 토지는 분할하여 매각되고, 새로 땅을 구입한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활용한다.

정부는 건축 관련 법규정을 완화해 현대식 주택 보급을 장려하고 있다. 커피를 재배해 돈을 벌기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기가 쉬운 이유다. 다른 지역보다 나이로비와 가까운 지리적 위치로 인해 키암부의 주택 수요가 많다. 모든 면에서 키암부 지역의 커피 밭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아울러 키암부의 커피 생산 감소는 케냐 커피산업 전체로 영향을 미친다. 북쪽의 니에리, 키리냐가, 무랑가와 같은 커피 생산 지역에도 영향을 준다. 도시화로 인해 커피 재배지가 줄어들면서 농민들은 그 동안 농사를 짓지 않은 땅에 커피를 심게 되지만, 새로 개척한 땅들은 좋은 커피가 성장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척박한 토지일 가능성이 많다. 양질의 토양과 적합한 기후 조건이 맞지 않는 지역에서 좋은 커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케냐 커피는 대부분 수세식(washed) 방식으로 가공처리 한다. 케냐의 농부들이 수확한 체리에 대한 과육 제거(펄핑)와 선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상기씨 제공
케냐 커피는 대부분 수세식(washed) 방식으로 가공처리 한다. 케냐의 농부들이 수확한 체리에 대한 과육 제거(펄핑)와 선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상기씨 제공

케냐 커피는 좋은 산미와 복잡한 풍미로 인기가 높아 전 세계 바이어들에게 비교적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며 거래되고 있다. 그래서 경작의 효율을 꾀한다면 수익성 높은 농작물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케냐는 경작지 면적으로 보면 중미의 코스타리카와 비슷한데 두 나라의 커피 산업은 모두 도시화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코스타리카는 커피 생산량에 있어서 케냐의 두 배 수준이다. 단위 면적당 커피 재배의 효율이 좋은 것이다. 생산량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전문가들은 케냐의 단위 경작 면적이 작아서 커피 재배의 효율이 떨어지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케냐커피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전체 커피의 60%는 8,300여㎥(약 2,500평)보다 작은 소규모 농민들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경작지를 인위적으로 넓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르완다의 경우처럼 정부가 장기적으로 토지정리에 개입하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생산성 제고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과거 르완다에서는 가구당 평균 0.5㏊(약 1,500평)보다 작은 커피 농장을 소유했다. 수확량의 60% 이상은 0.7㏊(약 2,100평)보다 작은 곳에서, 25%는 0.25㏊(약 750평)보다 작은 땅에서 생산됐다. 이에 대해 르완다 정부는 농업 생산성과 토지 효율성을 제고하면서 환경 파괴를 피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했다.

새로운 토지법은 좁은 경작지는 토지 이용에 효과적이지 않으며, 가족 농장 단위의 소규모 경작 방식으로는 비효율적이어서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 결국 진행상의 어려운 문제가 있었지만, 경지를 통합 정리하는 선택을 꾀했다. 지속적으로 빠르게 증가하는 인구의 식량 안보 차원에서도 활용 가능한 농지의 재편성과 농업기술의 혁신을 필수적인 과제로 본 것이다.

케냐도 이런 토지정리를 검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5년 초, 케냐 정부는 토지 통합을 목적으로 1㏊ 미만 경작지의 분할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법령이 현실적으로 강제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토지 거래를 지하 밀매 또는 블랙 마켓(암시장)으로 변질시키고, 토지로 인한 분쟁에 불을 지필 우려가 있다는 반대파의 저항에 부딪혔다. 결국 토지개혁 법안은 철회됐다.

대신 좀 더 적극적인 정부 개입이 진행 중이다. 2018년 초 키암부 주지사는 커피 농장을 주거지역으로 형질변경 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부동산 개발이 훨씬 많은 수입을 보장하더라도 농업은 정책적인 보호가 필요한 산업이라는 차원이었다. 투자 목적으로 부동산을 취득하는 사람들은 작물을 키우는 농지 이외의 땅을 사도록 했다. 그러나 이런 강력한 정책 수단도 개발의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 언정 꾸준히 오르는 부동산 가격 상승과 이에 편승하는 사람들의 욕망들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급격히 오른 토지 가격이 지속적으로 개발 수요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어둑어둑한 저녁 나이로비로 돌아오는 길은 쓸쓸했다. 한창 진행중인 도로 포장 공사, 퇴근길의 복잡한 도로의 소음과 먼지 사이로 농민들의 근심 섞인 얼굴이 겹치면서 이 나라가 개발의 후유증을 어떻게 보상하고, 치유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 성장에 따른 도시화는 필연적이다. 그리고 성장이라는 그늘 아래에서 기존 산업이 받는 불가피한 희생을 우리는 경험한 바 있다. 개발 이익에 편승한 난개발로 자연환경이 훼손되고, 수많은 산업화의 희생자들을 양산했다는 점도 선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케냐의 늘어나는 콘크리트 숲과, 점점 줄어드는 커피 생산을 보면서 몇 년 후에는 고급스럽고, 우아한 케냐 커피의 깊은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아울러 농촌의 젊은이들이 자부심을 갖고 커피를 생산하는 전통이 사라지고, 가난한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 지에 대한 우려도 들었다. 이미 우리는 과거 고속 성장기를 겪으면서 개발에 대한 이익은 극소수에게,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와 희생은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왔음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1988년 약 13만톤을 기록했던 케냐의 커피생산량은 30년이 지난 최근에는 4만톤가량, 3분의 1이하로 줄어들었다. 반면 같은 기간 이웃한 에티오피아는 19만톤에서 47만톤으로 커피 생산량이 급증했다.

최상기 커피프로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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