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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물시계 제작자 다 알아냈다… 초음파로 닦아내니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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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물시계 제작자 다 알아냈다… 초음파로 닦아내니 드러나

입력
2020.04.22 11:18
수정
2020.04.22 16:5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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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보존과학센터, ‘자격루’ 보존처리 통해 마모된 글자 확인

덕수궁 광명문에 있던 자격루.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덕수궁 광명문에 있던 자격루.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자격루’(自擊漏)는 물의 증감량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로, 조선시대 국가 표준 시계였다. 지금은 조선 과학기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문화재다. 지금 남아 있는 국보 제229호 창경궁 자격루는 1434년 세종 지시로 장영실(?~?)이 만든 초기 자격루가 아니다. 1536년(중종 31년)에 다시 제작됐다. 더욱이 온전하지도 않았다. 쇠구슬이 굴러 조화를 이루던 부분은 사라지고 물통들만 남은 데다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는 바람에 만든 사람도 전부 알 수 없었다.

이에 문화재청은 2018년 8월 국보의 보존처리에 착수했고, 1년 7개월 만에 작업을 마쳤다. 그 결과 자격루 항아리에 이름이 새겨진 제작자 12명 중 그간 완전히 식별되지 않던 4명의 정체가 드러났고, 몰랐던 제작 기법과 성분도 알게 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이번 보존처리 과정에서 새로 확인한 사실을 22일 공개했다.

우선 수수호(受水壺ㆍ물을 받는 원통형 청동 항아리) 왼쪽 상단에 양각으로 새겨진 제작자 명문(銘文ㆍ금석에 새긴 글자) 중 마모되거나 오염돼 읽을 수 없던 글자들이 판독됐다. 이를 통해 이번에 파악된 인물들은 이공장(李公檣ㆍ?~?)과 안현(安玹ㆍ1501~1560), 김수성(金遂性ㆍ?~1546), 채무적(蔡無敵ㆍ1500~1554) 등 4명이다. 지금껏 이공장 이름의 ‘장’(檣)은 ‘색’(穡), 김수성의 ‘성’(性)은 ‘주’(注), 안현의 ‘현’(玹)은 ‘진’(珍)으로 잘못 알려졌고 채무적의 ‘무’와 ‘적’은 아예 해독되지 못했었다.

자격루 왼쪽 수수호에 새겨진 명문.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자격루 왼쪽 수수호에 새겨진 명문.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파란색 글자가 보존처리를 통해 새롭게 확인한 부분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파란색 글자가 보존처리를 통해 새롭게 확인한 부분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자격루 제작 당시 이공장은 사복시정, 안현은 사헌부 집의, 김수성은 사헌부 장령, 채무적은 장악원 주부였다는 게 센터 설명이다. 특히 안현과 김수성, 채무적이 천문 전문가로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 ‘국조인물고’, ‘문과방목’ 등에 남아 있다고 센터는 밝혔다. 명문에 있는 나머지 제작자 8명은 영의정 김근사, 좌의정 김안로 등 두 정승과 유보, 최세절, 박한, 신보상, 강연세, 인광필 등이다.

제작자와 더불어 일부 제작 기법도 규명됐다. 수수호 표면에 새겨진 승천하는 용과 구름 문양을 분석해보니 항아리를 만든 뒤 정교하게 조각한 용과 구름을 차례로 덧붙였고, 밀랍 주조 기법을 사용했을 공산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센터는 3차원(3D) 입체 스캔과 실리콘 복제 방법으로 왼쪽과 오른쪽 수수호 용 문양을 각각 평면에 펼쳐 대부분 같은 모습이지만 얼굴ㆍ수염이 약간 다르다는 사실도 찾아냈다.

제작 시기를 알려주는 큰 파수호(播水壺ㆍ물을 보내는 청동 항아리) 명문 ‘가정병신육월 일조’(嘉靖丙申六月 日造)는 현재 검은색이지만 성분이 은(銀)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센터는 보존처리를 통해 부식 탓에 검게 변한 은을 본래 빛깔로 되돌렸다. ‘가정’은 명나라 가정제가 1522~1566년 사용한 연호다.

사진은 왼쪽 수수호(왼쪽)와 오른쪽 수수호 용 문양.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사진은 왼쪽 수수호(왼쪽)와 오른쪽 수수호 용 문양.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대파수호와 '가정병신육월 일조' 명문.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대파수호와 '가정병신육월 일조' 명문.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이번 보존처리에는 첨단 기술이 동원됐다. 센터는 자격루의 보존 상태를 정밀 조사해 부식의 범위ㆍ종류 등을 파악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적합한 보존처리 방법을 찾아냈다. 3D 입체 실측을 활용해 유물의 형태를 정밀하게 기록했고, 비파괴 성분 분석으로 보존 상태를 파악했다. 그 결과 표면에는 청동 부식물이 형성됐고, 그 위에 실리콘 오일 성분의 기름과 흙먼지가 들러붙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오염물은 계면활성제와 초음파 스케일러(초음파 진동의 미세흐름을 이용해 표면 이물질을 제거하는 장치) 등으로 제거했고 재질 강화 처리도 했다.

지금 남아 있는 자격루 부품은 대ㆍ중ㆍ소 파수호 3점과 같은 크기의 수수호 2점인데, 창경궁 보루각에서 보관되다가 일제 강점기에 덕수궁 광명문으로 옮겨졌다. 센터 관계자는 “자격루가 광명문으로 옮겨진 뒤 흙먼지 제거, 기름 도포 같은 간단한 보존처리가 이뤄졌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식과 손상을 막기 힘든 상태였다”며 “자격루 원형을 보존하고 제작 참여자ㆍ기법 등 사라진 기록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는 게 이번 보존처리의 큰 의미”라고 말했다.

덕수궁에서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이동해 온 자격루의 하차 및 이동 모습.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덕수궁에서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이동해 온 자격루의 하차 및 이동 모습.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보존처리가 끝난 자격루는 이제 센터에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된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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