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확진자 ‘조용한 전파’ 차단… 美 州정부들 진단키트 확보 노력佛 덴마크 의심증상자 전원 검사… 獨은 전 국민 항체표본 추출 계획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출구전략을 두고 고민에 빠진 미국과 유럽이 ‘대규모 검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 추락한 경제 회복을 위해 봉쇄 해제를 서두르고 있지만 이른 정상화가 바이러스 재확산을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자 내놓은 고육책이다. 결국 감염병 대책의 기본을 대안으로 내놓은 건데 증상이 가볍거나 무증상 감염 같은 ‘조용한 전파(silent transmission)’를 억제하면 방역 우려를 상당 부분 불식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22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유럽 내 경제정상화의 선두에 선 덴마크 정부는 이날부터 발열, 기침 등 코로나19 의심증상이 조금이라도 나타난 사람을 상대로 진단ㆍ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의료진과 중증 환자로 한정했던 기존 검사 대상을 대폭 확대한 것이다. 덴마크는 앞서 15일 초등 교육기관이 문을 연 데 이어 미용실 등 일부 상점들의 영업 재개를 허용한 상황이다.
프랑스도 이동금지령 시한인 내달 11일까지 의심증상자 전원을 검사할 계획이다. 이동제한을 연장하지 않기로 정부 방침을 굳힌 만큼 검사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 역시 보름 정도 더 봉쇄령을 유지할 예정이나 우선 이달 말까지 하루 검사량을 현재의 4배 수준인 10만건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주(州)정부가 검사 확대에 앞장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 정상화 재개 권한을 각 주에 일임하면서 방역 책임도 떠맡기자 진단키트 확보에 매달리는 모습이다. 이들은 대규모 검사를 통해 잠재적 확진자를 많이 찾아낼수록 봉쇄를 푸는 시점도 그만큼 빨라질 것이란 논리를 내세운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판에도 한국은 부족한 키트 수요를 메울 확실한 공급처로 부상하고 있다. 공화당 소속인 코리 가드너 상원의원(콜로라도)은 이날 트위터에 글을 올려 “10만회 정도 검사가 가능한 한국산 키트가 곧 콜로라도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미 한국산 제품 수입을 놓고 트럼프와 거친 말을 주고 받았던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는 50만회 분량의 진단키트를 챙겼다.
독일과 이탈리아, 영국은 전략을 한 단계 더 확장했다. 두 국가는 전면적인 면역검사, 다시 말해 코로나19를 극복한 이들의 항체를 샅샅이 들여다 보겠다는 구상이다. 이럴 경우 별다른 증상 없이 회복한 ‘숨은 확진자’를 발견해 감염 확산 원리를 규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탈리아는 다음달 초 1차 면역 검사(15만명)를 시작하고, 지역 검사를 이미 실시 중인 독일도 수개월 안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항체 표본을 추출하겠다는 시간표를 짜놨다. 영국도 23일 우선 잉글랜드 지역에서 2만5,000명을 대상으로 면역검사를 시작해 1년 안에 30만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서구사회가 뒤늦게 진단ㆍ검사 강화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멈추다시피 한 사회ㆍ경제활동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다. 그렇다고 무작정 통제조치를 완화하기엔 재확산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방역과 경제’ 사이 딜레마 속에 결국 도달한 결론이 ‘적극적으로 감염자를 찾아내 격리ㆍ치료한다’는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방법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얘기다.
마그누스 헤우니케 덴마크 보건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광범위한 검사가 (경제활동) 재개의 범위와 속도를 결정하는 열쇠”라고 단언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도 18일 “감염병 전문가들은 면역검사가 봉쇄 해제 시점을 조정하고 소득 감소와 사회적 고립을 최소화하는 핵심 토대라고 본다”고 긍정적 평가했다. 바이러스 확산세가 한풀 꺾여 검사 여력이 생긴 점도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다.
물론 면역검사의 경우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는 의견도 나온다. ‘면역 여부를 판별하는 항체 검사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면역력의 지속성을 장담하기 어렵다’ 등의 반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소속 감염병 전문가인 마리아 커코브 박사는 최근 “현재로선 항체가 있어도 코로나19에 면역력을 가졌다거나 재감염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확신할 증거는 없다”고 강조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