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크지만 빠른 정부로 거듭나라
美·獨과 달리 재난지원금 엇박자… 소상공인 지원도 속터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한국은 세계적인 모범 방역 국가로 손꼽히고 있다.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기민하고 정책 대응 덕분이었다.
하지만 아직 경제 대책은 방역만큼 발 빠르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 위축은 경제 문제로 본격 전이되고 있다. 정부가 경제 회복의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으면서, 향후 경제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까지 대비하는 현명함을 보일 시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재난지원금도 소상공인 지원도 ‘느림보’ 지적
21일 정부 등에 따르면, 미국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작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0.4%에 달하는 대규모 재정지출에 나서고 싱가포르(7.9%), 일본(7.1%) 등도 통 크게 나서는 사이 한국도 8% 가까운 재정지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대표적인 지원 대책인 긴급 재난지원금은 정치권과 정부의 엇박자 속에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처음 ‘재난기본소득’ 제안을 한 것이 지난달 8일, 이후 정부가 소득 하위 70% 가구에 재난지원금 지급 계획을 밝힌 것이 지난달 30일이다.
이후 3주가 지나도록 재난지원금 논의는 여전히 지급 범위 논란에 머물러 있다. 지금의 속도라면, 정부가 목표로 하는 5월 지급도 불투명하다. 미국이 지난 14일부터 재난지원금 지급을 시작하고, 독일이 ‘선 지급 후 확인’ 방식으로 재난지원금을 신청 3일만에 지급하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은 의사결정 과정은 너무 오래 걸린다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지난 2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기준금리를 동결했다가, 미국이 금리를 인하한 뒤에야 임시 회의를 열어 금리를 낮춘 것도 통화당국의 소극적인 대응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철규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전 공정거래위원장)는 “코로나19 같은 재난 지원에 정부가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며 “최근 다른 선진국이나 대공황 당시 미국의 뉴딜 정책처럼 파격적인 지원으로 개인, 기업이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신속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정책 목표에 정확하게 지원을 전달하는 것이다. 정부는 정보통신기술(ICT)를 활용한 코로나19 확산 방지 대책을 전 세계에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피해 지원에는 축적된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피해 여부를 입증하는 것은 피해자의 몫이고, 지원 주체인 정부나 금융기관은 이를 다시 검증하는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 소상공인이 긴급대출을 신청하면 현장실사와 보증심사를 거쳐 보증서가 나오고, 이후 다시 대출을 신청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지난달 말부터 코로나19 직접대출에 나서고 있지만 신청자가 몰려 사업자의 생년 끝자리에 따라 ‘홀짝제’를 시행하는 실정이다.
기민한 대응을 위해서는 정부가 데이터를 활용해 지원 대상을 선별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영업자의 경영 상황을 간접 확인할 수 있는 지표로 국세청의 부가가치세 납부 정보나, 금융권이 가진 카드 승인액 등이 있지만 아직 이를 활용한 ‘핀셋 지원’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전략기획실장은 “영국이 소상공인의 피해 규모에 따라 지원금을 전달하는 것은, 평소 실태조사가 완벽히 이뤄져 있기 때문”이라며 “단순히 고용인원이나 매출 만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빅데이터를 활용해 소상공인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지원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이후 ‘곳간 관리’도 계획해야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재정을 늘리고, 이에 따라 재정건전성이 악화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다만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재정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2차 추경까지 반영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1.2%로,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재정 전문가들은 국가채무비율이 지난해 37.1%에서 1년만에 4%포인트 이상 상승한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2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면서도 “확장 재정이 중기적으로는 신용등급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향후 한국의 재정이 장기 불황을 겪으며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의 2배를 훌쩍 넘긴 일본(2018년 기준 238.7%)의 방향으로 갈 지,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확장재정을 펼친 뒤에도 여전히 재정건전성을 관리 가능한 범위로 묶고 있는 독일(70.4%)의 길을 갈 지는 정부의 계획에 달려 있다.
독일은 금융위기와 남유럽 재정위기 극복 과정에 강력한 확장재정으로 2007년 66.5%였던 국가채무비율이 2012년 90.4%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이후 연방정부 재정적자 증가율을 GDP의 0.35% 내로 제한하는 강력한 재정준칙을 시행해 국가채무비율을 다시 낮췄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독일은 2009년 헌법에 재정준칙을 반영하면서 균형 재정에 대한 의지를 확실히 했다”며 “한국도 늘어난 국가채무를 어떻게 갚을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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