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위기를 겪는 두산중공업을 살리기 위해 채권단이 빚을 임시로 떠안거나 만기를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두산중공업은 일단 급한 불을 끄게 됐지만,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만 4조원이 넘어 ‘산 너머 산’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은 21일 은행 내 최상위 의결기관인 ‘확대여신위원회’를 열고 오는 27일 만기가 예정된 두산중공업의 5억달러(약 6,000억원) 규모 외화채권을 대출로 전환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5억달러 외화채권은 두산중공업이 상반기 중 갚아야 하는 차입금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앞서 수은은 2015년 4월 두산중공업이 이 외화공모채를 발행할 때 지급보증을 섰다. 두산중공업은 최근 돈줄이 마르자 수은에 이 채권을 대신 갚아준 뒤 대출로 전환해달라고 요청했다.
대출 기간은 1년이며, 두산중공업의 요청으로 원화로 대출하기로 했다. 수은 관계자는 “이번 대출은 추가지원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닌 만기연장과 같은 성격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에 대한 유동성 지원 효과가 유지되도록 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로 두산중공업은 당장 코 앞에 닥친 고비를 넘기게 됐다.
시중은행 채권단도 기존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는 방안으로 가닥을 잡았다. 농협은행은 이달 말 만기되는 400억원 규모의 대출 만기를 연장하기로 결정했는데, 금융권에서는 하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800억원 역시 비슷한 결론이 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은행 역시 만기 연장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중공업에 대한 은행권 전체 채권액은 4조9,000억원으로, 이 중 수은이 1조4,000억원, KDB산업은행이 7,80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시중은행 중에는 우리은행 2,270억원, SC제일은행 1,700억원, 농협은행 1,200억원 규모이고, 외국은행이 4,75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급한 불은 껐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산적한 상태다. 작년 말 기준 두산중공업의 전체 차입금 4조9,000억원 중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은 4조2,000억원에 이른다. 당장 다음달에는 5,000억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도 상환해야 한다. 2017년 5월 발행한 이 사채는 발행일로부터 3년이 지나면 조기상환이 가능한데, 채권자 대부분이 풋옵션(특정 시기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시중은행 역시 추가 자금 지원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실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추가 자금 투입 언급은 시기상조”라며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외국계 은행의 입장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전체 채권액 중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진 않지만, 과거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외국계 은행들이 중장기적 기업 회생보단 단기 채권 회수에 치중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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