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미국 정부가 중소기업들을 위해 마련한 지원 프로그램이 법정 다툼으로 비화했다. 더 많은 수수료 수입을 챙기려는 은행들의 꼼수로 지원금이 대기업 위주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과 대기업을 향해 긴급자금을 낭비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미국 중소기업청(SBA)은 글로벌 투자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ㆍJP모건 등을 상대로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LA)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와 CNBC방송 등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기업 대출을 담당하는 은행들이 대출 규모가 큰 대기업의 신청을 우선시하고 소규모 대출 업무를 늑장 처리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은행들은 중소기업의 급박한 사정보다 수수료 수익 챙기기에 주력했다. 대출 신청 금액이 클수록 수수료도 많다는 점을 감안해 고의로 소규모 대출 업무를 지연 처리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JP모건은 미국 내 지점만 150개를 소유한 대형 레스토랑 업체 ‘루스 크리스 스테이크하우스’에 2,000만달러를 대출하고 대출금액의 1%에 해당하는 20만달러를 수수료로 챙겼다.
더 큰 문제는 중소기업 지원 몫으로 책정된 급여보호 프로그램(PPP) 자금 3,490억달러가 지난 2일 대출이 시작된 지 2주만에 바닥난 점이다. 소규모 기업들이 제대로 지원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SBA에 따르면 3,490억달러 중 45%는 100만달러 이상을 빌리는 대기업들에게 들어갔고, 불과 17%만이 15만달러 미만을 신청한 소규모 사업장에 배분됐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25일 의회를 통과한 2조2,000억달러(약 2,70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 패키지’ 가운데 3,490억달러를 PPP에 배정했다. 대출 형식이지만 기업ㆍ사업장이 두 달 간 급여나 임대료 등에 사용하면 반환 의무가 면제되는 보조금으로 전환된다.
당초 종업원 500인 이하의 소상공인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던 PPP는 경기부양 법안의 발의ㆍ통과 과정에서 대기업의 자회사나 체인별로 나눠 신청하는 게 가능해졌다. 대기업들이 PPP를 악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SBA는 지난 16일 “4,900여개 대출기관이 PPP에 참여해서 150만건 이상이 대출 승인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자원 낭비 논란이 거세지자 여당까지 비판에 가세했다.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법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승인받지 말았어야 할 기업들이 일부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의 릭 스콧 상원의원도 “PPP에 있어 수백만달러가 낭비됐다”고 꼬집었다.
은행과 대기업 측은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대형 햄버거 프랜차인즈인 쉐이크쉑은 PPP를 통해 대출받은 1,000만달러를 반납하기로 했다. JP모건도 “소규모 고객들이 다른 나머지 고객들보다 2배 이상의 대출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재무부는 이번 논란을 의식한 듯 580억규모의 항공업계 지원 방안에 정부의 주식 매수권 보유 같은 엄격한 조건을 추가했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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