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수업은 받지도 못하면서 과제만 많고, 어영부영 한 학기가 지나가는 것 같아요.”
서울의 한 사립대 건축학과에 다니는 김모(24)씨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첫 학기지만 학업에 전념하자는 결심은 일주일도 채 가지 못했다. 실습 수업이 많은 전공 특성상 대면 강의가 불가피한데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이론, 실습 가릴 것 없이 모든 강의가 무기한 온라인으로 전면 대체됐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구매한 설계실의 고가 장비도 사용이 금지됐다. 김씨는 “5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에는 설계실 이용료도 포함돼 있는데 학교 측에서 등록금 중 일부는 학생들에게 반환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토로했다.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온라인 수업이 지속되면서 대학생의 99%가 등록금 반환을 원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국 27개 대학 총학생회가 참여한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는 2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의 늑장 대응으로 2개월간 학생들의 재난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다. 총선 이후 대학가 대책 마련 예산을 확보하겠다던 정당들도 감감 무소식”이라며 “99%의 대학생이 요구하는 상반기 등록금 반환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원격수업 질 떨어져… 강의 대신 과제로만 대체하는 교수도
전대넷이 이날 공개한 전국 203개 대학 2만1,784명 학생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99.2%인 2만1,607명이 ‘등록금 반환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학생 10명 중 6명 가까이(55%ㆍ1만1,878명)가 상반기 등록금 중 절반을 반환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28.4%(6,179명)는 등록금의 20~30% 반환이 적절하다고 봤다.
학생들은 학교가 환불을 해야 하는 이유로 질 낮은 온라인 강의, 학교 내 실습실 등 시설 이용 금지 등을 꼽았다. 학생 82%(1만7,692명)가 ‘원격 수업 질이 떨어져서’라고 응답했고, ‘시설 이용이 불가능해서’라고 답한 학생도 78.6%(1만6,953명)였다.
일부 학교는 실기ㆍ실험 수업 자체를 실시하지 않거나 강의를 녹음 파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었다. 박소연 교육대학생연합 사무국장은 “온라인 수업에 대한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아 어떤 교수의 강의에서는 정작 수업하는 건 10분인데 한 시간 이상 소요되는 과제는 3, 4개를 내주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생 30%가 구직난 호소… “아르바이트 부당해고 당해”
등록금 반환 이슈는 대학생들의 경제적 재난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기업들이 공개채용 규모를 줄이거나 없애는 데다 영세 업체들은 아르바이트생마저 뽑지 않는 등 구직난이 심화하고 있는 탓이다. 여기에 돌려받기 힘든 주거비용까지 더해지면서 대학생의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등록금 반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답한 대학생은 37.4%에 달했다. 또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고 응답한 대학생은 30.8%, 아르바이트에서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학생도 14.8%나 됐다. 박소연 사무국장은 “대학생들은 등록금도 내야 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도 잃은 상황에서 자취방 월세까지 허공에 뿌리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전대넷은 교육부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학생들의 3자 협의회를 구성해 학생들의 등록금 반환 요구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희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지난 2개월간 등록금 반환을 요구해 왔지만 대학 측은 등록금 동결로 어렵다는 입장만 유지하고 있다”라며 “단순히 대학생들에 대한 걱정과 위로가 아닌, 동등한 회의체 안에서 활발한 논의를 통해 정부와 국회가 대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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