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앞에 한 대학생이 있다고 가정해 봅니다. 미모가 수려하고 이성에게 20번 이상 고백을 받아봤으며, 연애는 7번 정도 했습니다. SNS에는 대략 1만명이 팔로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오 인기 있는 친구군’이라고 생각 들지 않으시나요? 그런데 요즘, 이런 친구들이 자신을 ‘아싸(아웃사이더)’라고 부릅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요즘 대학가, 그리고 청년들 사이에서는 박완서 소설가의 ‘도둑맞은 가난’이라는 소설명을 응용한, ‘도둑맞은 아싸’ 대란이 화제입니다. 시작은 유튜브인데요. 자신을 ‘아싸’라고 칭하는 크리에이터들이 혼자 밥을 먹고 수업을 듣는 등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 주는 영상 콘텐츠가 인기를 얻다, 이내 수십만 건의 비판으로 불거졌습니다. ‘아싸’ 라는 것은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고립된 사람들을 칭하는 표현인데, 누가 봐도 아싸가 아닌 사람이 그것을 패션처럼 소비하는 행태가 기만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진 거지요.
누군가는 말합니다. 아싸라는게 딱 법으로 범위가 정해진 것도 아니니까, 저 유튜버들처럼 남보다 늦게 복학했다던가, ‘편입해서 잠시 아는 사람 없음’ 정도의 상태도 아싸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요. 하지만 상담가인 저로서는 “그들 절대 아싸라고 불릴 수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그 답은 실제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진짜 아싸’ 청년들의 말에 귀 기울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관계망 형성의 어려움이 핵심 고통인 그들이,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는 브이로그를 한다? 그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아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타인의 시선’이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2018년 1월에 통계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요. 왕따를 겪었던 학창 시절의 기억, 그리고 그에 기반한 후유증, ‘남이 날 어떻게 볼까’하는 두려움이 69.5%에 달했습니다. 이런 청년들이, 자신의 ‘아싸 일상’을 영상으로 찍어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온라인에 게시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찐 아싸’들이 유행처럼 소비되는 그 영상들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더욱 위축되고, 괴롭습니다. 나는 일평생 소통이 너무 어려운데, 그래서 초등학생 때도, 중학생 때도 왕따이다가, 대학와도 변하지 않고 아싸가 되었는데. 저 사람들은 아싸라고 자기를 부르면서 오히려 역으로 그걸 소통의 도구 삼아 자신을 PR한다? 바로 이 지점이 박완서 소설가의 ‘도둑맞은 가난’ 작품과 이어지는 부분인 겁니다. 나에게는 지겨우리만큼 끝없이 따라다니는 고통의 그림자를, 누군가는 ‘잠시 차용’해서 자신을 더욱더 반짝이게 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이 말이죠.
어쨌든, 비판의 역풍을 맞은 아싸 트렌드는 조만간 사라질 겁니다. 유튜버들이 ‘아싸’라고 자칭하는 건 곧 멈출테고요. 왜냐고요? 이미 분란이 생겨버린 키워드는 더 이상 ‘힙’하지 않으니까요. 다음 유행 키워드, 또 그를 활용한 브이로그를 만들 테니까요. 그렇게 그들이 다른 유행으로 훌쩍 떠난 후에도, ‘진짜 아싸’들의 삶은 계속됩니다. 때때로 화장실에서 혼밥을 먹으며, 휴강이 되었는지 모르고 강의실에 가며, 타인의 시선 때문에 휴학을 고민하며 말이죠. 그들의 삶 괴로움 겉 부분만을 잠시 훑고 떠난 그들은 경험조차 해 보지 못한 순간들을. 진짜 아싸들은 여전히 살아갈 겁니다.
인싸들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가 될까요? 또 무엇으로 자신의 SNS와 유튜브를 PR하고 꾸미게 될까요? 부디 그 유행 아이템이 경하게는 아싸, 모태 솔로, 중하게는 거식증, 틱장애, 왕따 같은 것, 즉 누군가의 ‘아픔’을 차용한 것들은 아니길 바랍니다. 당신들이 잠시 유행처럼 잠시 훑고 떠난 그 삶의 궤적을, 매일같이 버텨 가는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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