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철 칼럼] 그래도 경제정책은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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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칼럼] 그래도 경제정책은 바꿔야 한다

입력
2020.04.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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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태풍과 ‘보수 삽질’에 총선 압승

여당 승리 ‘소주성’ 고집 명분 될까 걱정

정의ㆍ분배 좋지만 성장ㆍ번영 묘책 절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4ㆍ15 총선 결과를 “국난 극복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총선 전부터 여당의 승리는 분명해 보였다. 50대 후반 친구 다섯 명이 저녁을 함께 했다. 세월에 낡은 만큼, 생태탕을 먹어도 명태 대가리까지 쪽쪽 훑어 먹는 맛을 아는 친구들이었다. 총선 직전이라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재난소득이니, 분배니 하는 얘기에서 뜻밖에 입장이 갈렸다. 세 명은 늘 그렇듯 다소 냉소적이었으나 두 명은 의외였다. 낮은 어조였지만, “그래도 빈부격차 줄이자는 건 나쁘지 않다”고 했다. 그 순간 이번 총선은 민주당이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대 후반 ‘꼰대’들의 마음까지 움직인 분배정책의 효과는 생각보다 강력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시민당만 합쳐 전체 의석 300석의 60%인 180석의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멍청한 ‘보수의 삽질’이 문재인 정권에 총선 승리를 갖다 바쳤다는 얘기가 많다. 하지만 나는 ‘부자 아닌 다수(多數)’를 겨냥해 분배에 초점을 둔 현 정권의 고집스러운 경제ㆍ사회정책의 누적 효과가 압도적 승리의 기반이 됐다고 본다.

사실 현 정부 경제ㆍ사회정책에 대해선 많은 비판이 제기돼 왔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 같은 소득주도성장책이나, 주52시간 강행 등 친노동 정책이 민간의 경제활력을 위축시키고, 나라의 번영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생산과 투자, 고용 등 주요 경제지표는 정책 실패의 징후를 분명히 드러냈다. 그래도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부자 아닌 다수를 겨냥한 정책을 고수했다.

돌아보면 부자 아닌 다수를 위한 정책의 목록은 끝이 없다. 소득주도성장은 성장보다 저소득층 소득을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은 줄잡아 전체 고용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이하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려줬다. 부작용으로 만만찮은 실직이 발생했으나, 전체 2,000만명 근로자 중 비정규직 750만명을 포함한 1,000만명 이상 근로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갔다.

최저임금 같은 요란한 시책뿐만 아니다. 65세 이상 노인 저소득층 약 630만명을 대상으로 한 기초연금이 현 정부 들어 월 30만원까지 인상됐다. 약 180만가구에 아동 1인당 월 10만원씩 혜택이 돌아가는 아동수당도 현 정부 들어 신설됐는데, 코로나 긴급지원 성격으로 총선 이틀 전에 가구당 최소 40만원씩 한꺼번에 지급됐다. 이 밖에 현 정부 들어 청년수당이 각 지자체별로 확산됐고, 지급액과 기간이 늘어난 실업급여 역시 청년,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적잖은 호응을 얻었다. 뒤집어 말하면 현 정권은 일관된 분배ㆍ복지정책으로 줄잡아 1,000만가구, 유권자 연 2,000만명의 ‘조용한 호응’을 얻으며 지지 저변을 획기적으로 넓히는 정치적 성공을 거둔 셈이 됐다.

이런 정책들을 포퓰리즘이라고 굳이 비난할 생각은 없다. 사회 양극화 해소 여망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민심이었고, 현 정권은 그 여망에 부응해 압도적 지지를 얻은 셈이다. 그럼에도 그동안의 경제정책이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의 지속적 번영을 담보할 새로운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데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건 큰 문제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세금을 내는 민간 경제가 가라앉으면 재정정책도 유지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 경제는 자동차와 조선 등 주력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음에도 미래의 번영을 일굴 신산업과 서비스산업은 여전히 정체 상태다. 이념과 정치적 타산에 묶여 규제 완화는 말뿐이고, 노동시장 경직은 풀리지 않고 있다. 포스트 반도체 산업, 소재ㆍ부품ㆍ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서비스 산업 혁신, 혁신 금융 등 목표는 정해졌어도 좀처럼 성과는 없다.

현 정권은 이제 남은 임기 동안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총선 승리가 ‘소주성’을 고집하는 명분이 돼선 안 된다. 지금까지 분배정책으로 민심 확보에 성공한 만큼, 앞으론 나라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번영을 기약할 수 있도록 경제 정책의 대강을 바꾸는 과감한 도전에 나서야 한다.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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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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