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게 없으니 남녀노소 OTT 몰입
과도한 시청으로 부작용 호소도
“지난 주말 미국 유명 드라마 시즌 1~3을 ‘완주’했어요. 이틀 만에 25편을 본 거죠.”
직장인이자 자취족인 이주한(가명ㆍ30)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도로 확산한 지난 2월 중순 재택근무를 시작한 이후 두 달 여간 저녁에도 집에만 머문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퇴근 후 거래처 관계자나 친구들과 술 한잔을 기울이던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일상이다. 대신 이씨는 매일 오후 6시 10분쯤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넷플릭스를 켠다. 저녁을 먹을 때도, 침대에 누워서도 TV와 스마트폰으로 하루 4시간 이상씩 동영상을 본다. 이씨는 “바깥 활동을 하지 않아서인지 잠이 오지 않고 시간도 잘 안 가 매일 넷플릭스를 틀어 놓는다”며 “지난달엔 TV도 43인치에서 55인치로 바꿨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하면서 ‘넷플릭스 폐인’이 양산되고 있다. 주말엔 하루 종일, 평일엔 밤 늦게까지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에 의존하는 이들이다.
넷플릭스 폐인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휴교와 학원 휴업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10대부터 저녁 약속이 부쩍 줄어든 20~50대 직장인, 자녀를 대신해 손주를 돌보는 60대까지 푹 빠졌다. 서울 강동구의 딸 집에서 6세 손녀를 봐주는 신미희(61)씨는 “딸 내외가 맞벌이를 하는데 손녀 유치원이 휴교하는 바람에 지난달 초부터 손녀를 돌보며 함께 넷플릭스를 시청한다”면서 “손녀에겐 애니메이션 같은 걸 보여주고, 잠이 들면 드라마를 튼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팬데믹으로 시청자가 급증하면서 넷플릭스는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넷플릭스는 주당 439.17달러(약 53만5,000원)에 장을 마감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찌감치 유료 동영상 시장 1위를 달성한 국내에서도 토종 OTT들을 따돌리고 독주를 거듭하고 있다. 황승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도쿄올림픽 등 스포츠 경기들이 취소ㆍ연기되면서 넷플릭스는 올해 1분기에 예상한 ‘전 세계 유료가입자 700만 순증’ 이상의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에선 넷플릭스 중독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이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우선 피로가 쌓여도 쉽게 끊지 못하는 현상이다. 한달 반째 재택근무 중인 최모(32)씨는 “습관이 돼서 그런지 시청하지 않아도 넷플릭스를 틀어놓지 않으면 허전한 기분마저 든다”고 했다.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자신을 ‘넷플폐인’으로 지칭하며 중독 증세를 공유하는 이들도 생겼다.
넷플릭스에 이어 다른 OTT 서비스에도 두루 가입해 비용 부담이 커진 이들도 적지 않다. 경기 성남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민지(30)씨는 “지난해 말까지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료 7,000원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넷플릭스와 영화용 왓챠플레이, 국내 드라마용 티빙, 유튜브 프리미엄까지 동영상 콘텐츠에 매달 3만원 이상을 쓴다”며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과 정액료를 나눠내고 계정을 공유하는 ‘계’를 하는 지인도 있다”고 전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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