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원룸 화재현장 10여명 목숨 구한 알리씨
불법체류 알려져 강제출국… “의상자 지정해야”
지난달 강원 양양군 원룸화재 현장에서 카자흐스탄에서 온 20대 청년이 불길을 뚫고 10여명의 이웃을 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청년은 불법체류 사실이 탄로날 것을 알면서도 불길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이 같은 선행이 발목을 잡아 출국을 앞둔 사연이 알려지면서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오후 11시22분쯤 양양군 양양읍 구교리 자신의 원룸 현관에 들어서던 율다셰브 알리 압바르(28)씨는 매케한 냄새를 맡았다. 불이 난 것을 직감한 그는 서툰 한국어로 “불이야”를 외치며 이웃 10여명을 대피시켜 소중한 목숨을 구했다.
그는 이어 2층에 있던 50대 여성이 아직 집안에 있다는 얘기를 듣자 도시가스 배관과 유선 케이블을 잡고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알리씨는 목과 등에 2~3도 화상을 입었다.
얼마 전 서울시내 한 병원에서 퇴원한 알리씨는 현재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입원과정에서 불법체류 사실을 털어놔 다음달 1일 한국을 떠나야 할 처지다. 여기에 수 백만원이 훌쩍 넘는 화상 치료비도 감당하기 힘들다.
“불법체류자 신분이 탄로날 텐데 왜 불 속으로 뛰어들었냐”는 질문에 그는 “사람을 살려야 하잖아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사연은 옆집에 사는 이웃인 장선옥(58) 양양 손양초등학교 교감이 최근 강원도청 신문고에 ‘알리를 의사상자(義死傷者·타인의 위험을 구제하다 사망 또는 부상당한 사람)로 선정해 달라’는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2017년 관광비자로 입국한 알리씨는 20만원짜리 월셋방을 전전하며 일용직으로 일했다. 공사장에서 번 돈으로 고국에 있는 부모님과 아내, 두 자녀를 책임져왔다.
정 교감은 “아무리 불법체류자라고 해도 10명 이상의 이웃들을 구하다 다친 알리씨를 아무런 보상 없이 내쫓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며 의사상자 지정을 요구했다.
이방인 청년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양양군 구교2리 주민들과 장 교감 및 교사들이 모금에 나서 치료비 700만원을 모았다. 그리고 지난 16일엔 양양군에 의사상자 지정 신청을 했다. 알리씨가 의상자(義傷者)로 인정되면 법률이 정한 보상금과 의료급여 등을 지원 받을 수 있다.
양양=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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