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오디션’과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의 작가 천계영(1970~)은 2018년 퇴행성관절염으로 손을 쓸 수 없게 되면서 목소리와 포토샵으로 작업을 재개했다. 그를 소개한 2019년 EBS ‘지식채널 e’는 “독자들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5분을 위해 내 손가락이 움직이는 100시간이 재미있지 않다면 그것은 실용적이지 않다”던 작가의 말을 자막으로 소개했다. 이제 목소리로 컴퓨터와 소통해야 하는 그의 작업 시간은 아마 전보다 열 배 스무 배 늘어났을 것이다. 그는 “1년 365일 일은 계속되는데 나의 삶이 결과로만 기록된다면 그것은 과연 실용적일까?”라는 말도 했다. 그가 최근 유튜브로 ‘말로 하는 작업’을 선뵌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는 만화가로서 마지막 말풍선에 담고 싶은 말로 “어쩌다 이 별에 사람으로 태어나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 많이 해 보고 갑니다”라고 했다.
세계적인 SF ‘스타 트렉’을 비롯, 마블 코믹스의 여러 작품과 컴퓨터게임 등에 참여한 그래픽 디자이너 겸 개념예술가 프랜시스 사이(Francis Tsai, 1967.4.14~2015.4.23)는 2010년 ‘루게릭 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으로 손을 못 쓰게 됐다. 그는 2011년 초부터 발과 휴대폰으로 그림을 그렸다. 왼발로 폰을 잡고 오른발 엄지 발가락으로 터치스크린을 조작하는 방식이었다. 2011년 말, 발 근육마저 말을 듣지 않게 됐다. 지인의 소개로 컴퓨터 안구조작 기법이란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스웨덴 기업 ‘Tobii’의 안구 조작 장비와 프로그램을 익혀, 3D 디자인 프로그램인 ‘스케치업’과 포토샵으로 자신의 ‘개념’을 시각화하기 시작했다. 발목을 삐어 크러치(Crutch)에 적응하는 데도 짜증과 고통을 겪는 게 사람이다. 발과 안구를 손처럼 부리기 위해 그가 들인 학습과 훈련의 시간이 어떠했을지 경험 없는 이들은 짐작도 못할 것이다.
10세 무렵 영화 스타워즈에 매료돼 루크 스카이워크를 영웅처럼 여기며 성장했다는 그는 의예과를 진학했다가 건축학과로 옮겼고, 결국 유년의 꿈이던 SF의 영웅과 악당들을 구현하는 일을 택했다. 97년 결혼한 그의 아내 린다(Linda)는 “그의 가장 놀라운 점은 투병 중에도, 간병하던 나조차 우울할 때가 많았지만, 끝내 자기 연민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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