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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의 박명훈처럼, 배우만 잘 되면 독립영화는 더 바랄 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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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의 박명훈처럼, 배우만 잘 되면 독립영화는 더 바랄 게 없어요”

입력
2020.04.22 20: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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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언덕’으로 돌아온 인디 스타 박석영 감독

박석영 감독은 "인생에서 아무 의미를 남기지 못하고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의미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박석영 감독은 "인생에서 아무 의미를 남기지 못하고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의미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2015년 독립영화계의 화제작은 ‘들꽃’이었다. 신인배우 정하담에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안기기도 했지만 단편영화 연출 경험도 없이 42세에 데뷔작을 만들어낸 ‘감독 박석영’도 눈길을 끌었다. 박 감독은 이후 ‘스틸 플라워’(2016)와 ‘재꽃’(2017)으로 이어지는 ‘꽃 3부작’을 내놨다. 후속작들도 호평받았다. 그 뒤 3년 만에 ‘바람의 언덕’을 들고 돌아왔다.

23일 개봉하는 ‘바람의 언덕’은 오래 전 헤어진 모녀 이야기다. 갖은 고생 끝에 고향인 강원 태백을 찾은 영분(정은경)은 자신이 버린 딸 한희(장선)가 필라테스 강사로 꿋꿋이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영분은 필라테스 수강생으로 등록, 한희 주변을 맴돈다.

사실 박 감독은 ‘재꽃’ 이후 슬럼프에 빠졌다. 차기작이 이런저런 제작비 지원 심사에서 번번히 떨어진 것. “케냐를 배경으로 아버지와 딸의 사연을 다룬 영화인데 촬영지가 위험하다고 떨어트리는 거예요. 돈은 못 벌어도 영화 만들면서 행복했는데. 한 2년은 우울에 젖어 보냈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그간 모아뒀던 2,500만원을 건넸다. “아침 드라마처럼 엄마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너무 고민하지 말고 만들어보라”는 말과 함께였다. 어머니가 투자자가 된 셈. 박 감독이 ‘바람의 언덕’ 배급을 위해 세운 영화사 ‘삼순’은 어머니 이름이다.

영화 '바람의 언덕'에선 오래 전 헤어진 모녀가 필라테스 수강생과 강사로 만난다. 엄마는 딸인 줄 알지만 딸은 그저 친절한 손님으로 인식한다. 영화사 삼순 제공
영화 '바람의 언덕'에선 오래 전 헤어진 모녀가 필라테스 수강생과 강사로 만난다. 엄마는 딸인 줄 알지만 딸은 그저 친절한 손님으로 인식한다. 영화사 삼순 제공

투자금을 받아 든 박 감독은 “심리적으로 가장 먼 곳”인 태백으로 향했다. 새벽 길을 걷다가 어떤 아주머니가 기쁜 표정으로 한밤중 길거리 벽에 뭔가를 붙이는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그 또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아들 영화가 개봉하면 당신이 직접 만든 엽서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등 열성 홍보원 역할을 했다. 여기에 실제 필라테스 강사를 겸업하고 있는 배우 장선의 모습까지 포개졌다. 떨어져 살아야 했던 모녀 사연이 떠올랐다. “‘꽃’ 3부작이 버려진 딸 이야기니까 이번엔 딸과 엄마가 마주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바람의 언덕’은 상영 방식도 독특했다. 개봉 전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라는 이름 아래 지역을 돌며 관객과 직접 만났다. “자식을 버린 영분은 사람도 아니다” “나도 엄마로서 사는 게 두려울 때가 있다” 같은, 관객들의 생생한 반응을 들을 수 있었다. “독립영화가 상업영화처럼 마케팅비 쓰면 결국 관객에게 돈 주면서 보러 오라는 꼴이 됩니다. 홍보에 돈 쓰고 다음 영화는 찍을 수 없는, 그런 구조를 탈피하고 싶었어요.”

영화 '재꽃'에 출연했던 박명훈.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박명훈을 '기생충'에 캐스팅했다. 딥포커스 제공
영화 '재꽃'에 출연했던 박명훈.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박명훈을 '기생충'에 캐스팅했다. 딥포커스 제공

박 감독의 전작 ‘재꽃’은 배우 박명훈으로도 유명한 영화다. 우연히 ‘재꽃’을 본 봉준호 감독이 “술 마시는 연기의 마스터”라며 박명훈에게 ‘근세’ 역할을 맡겼다. “독립영화는 배우 잘 되는 것밖에 바랄 게 없어요. 감독 잘 된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으니까요(웃음). 박명훈 같은 경우 보면 정말 기쁩니다. 얼마 전 만났는데 벌써 대배우가 돼 여유가 넘치더라고요(웃음).”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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