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언덕’으로 돌아온 인디 스타 박석영 감독
2015년 독립영화계의 화제작은 ‘들꽃’이었다. 신인배우 정하담에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안기기도 했지만 단편영화 연출 경험도 없이 42세에 데뷔작을 만들어낸 ‘감독 박석영’도 눈길을 끌었다. 박 감독은 이후 ‘스틸 플라워’(2016)와 ‘재꽃’(2017)으로 이어지는 ‘꽃 3부작’을 내놨다. 후속작들도 호평받았다. 그 뒤 3년 만에 ‘바람의 언덕’을 들고 돌아왔다.
23일 개봉하는 ‘바람의 언덕’은 오래 전 헤어진 모녀 이야기다. 갖은 고생 끝에 고향인 강원 태백을 찾은 영분(정은경)은 자신이 버린 딸 한희(장선)가 필라테스 강사로 꿋꿋이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영분은 필라테스 수강생으로 등록, 한희 주변을 맴돈다.
사실 박 감독은 ‘재꽃’ 이후 슬럼프에 빠졌다. 차기작이 이런저런 제작비 지원 심사에서 번번히 떨어진 것. “케냐를 배경으로 아버지와 딸의 사연을 다룬 영화인데 촬영지가 위험하다고 떨어트리는 거예요. 돈은 못 벌어도 영화 만들면서 행복했는데. 한 2년은 우울에 젖어 보냈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그간 모아뒀던 2,500만원을 건넸다. “아침 드라마처럼 엄마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너무 고민하지 말고 만들어보라”는 말과 함께였다. 어머니가 투자자가 된 셈. 박 감독이 ‘바람의 언덕’ 배급을 위해 세운 영화사 ‘삼순’은 어머니 이름이다.
투자금을 받아 든 박 감독은 “심리적으로 가장 먼 곳”인 태백으로 향했다. 새벽 길을 걷다가 어떤 아주머니가 기쁜 표정으로 한밤중 길거리 벽에 뭔가를 붙이는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그 또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아들 영화가 개봉하면 당신이 직접 만든 엽서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등 열성 홍보원 역할을 했다. 여기에 실제 필라테스 강사를 겸업하고 있는 배우 장선의 모습까지 포개졌다. 떨어져 살아야 했던 모녀 사연이 떠올랐다. “‘꽃’ 3부작이 버려진 딸 이야기니까 이번엔 딸과 엄마가 마주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바람의 언덕’은 상영 방식도 독특했다. 개봉 전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라는 이름 아래 지역을 돌며 관객과 직접 만났다. “자식을 버린 영분은 사람도 아니다” “나도 엄마로서 사는 게 두려울 때가 있다” 같은, 관객들의 생생한 반응을 들을 수 있었다. “독립영화가 상업영화처럼 마케팅비 쓰면 결국 관객에게 돈 주면서 보러 오라는 꼴이 됩니다. 홍보에 돈 쓰고 다음 영화는 찍을 수 없는, 그런 구조를 탈피하고 싶었어요.”
박 감독의 전작 ‘재꽃’은 배우 박명훈으로도 유명한 영화다. 우연히 ‘재꽃’을 본 봉준호 감독이 “술 마시는 연기의 마스터”라며 박명훈에게 ‘근세’ 역할을 맡겼다. “독립영화는 배우 잘 되는 것밖에 바랄 게 없어요. 감독 잘 된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으니까요(웃음). 박명훈 같은 경우 보면 정말 기쁩니다. 얼마 전 만났는데 벌써 대배우가 돼 여유가 넘치더라고요(웃음).”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