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경제 충격이 선진국을 넘어 위기에 취약한 신흥국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빠른 자본 유출 추세에, 세계 경제계가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다.
19일 외신과 금융권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6일“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이 대규모 자본유출과 외화 부족, 부채부담 증가 문제에 직면했다”며 선진국 그룹에 신흥국 위기 지원을 호소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자본 유출이 급격하게 발생하자 각국이 IMF에 긴급 지원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한 1월 20일 이래 신흥국 시장에서 970억달러(약 118조원)가 순유출됐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자본유출보다 3배 이상 큰 규모다.
신흥국 금융시장에서 해외 자본 이탈이 심각해진 원인은 일차적으로 금융시장의 공포심리다. 고수익을 노리고 들어온 해외 자본이 빠르게 탈출하면서 해당 국가의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통화가치 하락이 다시 추가 자본 유출을 부르는 악순환이 형성된 것이다.
여기에 신흥국 실물경제 자체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선진국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폐쇄조치(록다운)를 실행하면서 상품과 원자재 수요가 줄자 신흥국 수출도 위축될 상황이다. 게다가 코로나19가 인도, 러시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등에도 확산하면서 자체로도 록다운을 실행할 수밖에 없어졌다.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꺾이니 올해 신흥국의 성장동력은 크게 약해졌다. IMF는 최근 세계경제전망에서 중국, 인도, 이집트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신흥국이 2020년 마이너스 성장(-1.0%)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 침체에 맞서 재정 부양에 나서야 하지만,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높은 브라질(88%) 아르헨티나(97%) 이집트(72%) 남아공(64%) 등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게다가 외화부채 만기가 2020~22년에 집중돼 있어 대규모 외채 상환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를 시작으로 연쇄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선진국 그룹은 신흥국 위기가 선진국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원에 나서고 있다. 주요20개국(G20)은 빈국의 부채상환 유예를 올해 말까지 연장하기로 공동 선언했다. IMF는 긴급대출제도의 한도를 1,000억달러로 2배 늘린 데 더해, 신흥국 새로운 ‘단기대출라인’을 개설해 유동성 지원의 폭을 넓힌다고 밝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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