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전문가들 온라인 포럼서 한 목소리...“치료제는 후보 더 많이 확보해야”
의료계 전문가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너무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경계하는 목소리를 냈다.
17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공동으로 개최한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개발 어디까지 왔나’ 온라인 포럼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여러 나라에서 많은 기업들이 코로나19 약 개발에 뛰어들면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일 뿐이라며 지나친 장밋빛 전망이 계속되는 걸 우려했다.
첫 주제발표에 나선 신형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연구센터장에 따르면 백신의 코로나19 예방 효과에 대해 의학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신 센터장은 “선천면역을 높일 수 있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너무 서두르지 말고 동물실험으로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천면역은 나이 들면서 생기는 후천면역과 달리 사람이 출생 때부터 이미 갖고 태어나는 체내 방어기전을 말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기는 데는 후천면역보다 선천면역이 더 효과적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신 센터장은 “코로나19는 후천면역이 발휘되기 전에 이미 병이 진행되기 때문에 선천면역을 높이는 약이 필요하다”며 “호주와 일부 유럽 국가들이 고위험군에게 BCG(결핵) 백신을 접종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BCG는 선천면역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응수 대한백신학회장 역시 주제발표를 통해 개발 속도보다 성공 가능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성공의 조건으로 △지속적인 세계적 대유행(판데믹) 발생 가능성 △바이러스의 자연 돌연변이 발생 가능성 △다른 야생동물 기원의 유사 바이러스 출현 가능성 △자연적인 감염 때와 비슷한 면역반응 유발과 장기간 유지 여부 등을 들었다. 이 같은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면 백신이 개발된다 해도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어려울 거라는 예상이다.
“백신으로 생성되는 면역 반응이 방어기능보다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지, 이런 반응이 2, 3년 뒤 오히려 심한 질환으로 발병하지 않을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황 회장은 강조했다.
이후 주제발표를 이어간 박혜숙 이화여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도 “미국 식품의약국(FDA) 분석에서 의약품 심사 소요 기간이 짧을수록 부작용이 많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백신의) 빠른 심사는 사회적 요구도가 아니라 안전성에 대한 근거 자료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제약·바이오업계를 중심으로 올 연말이나 내년에 사람들이 제품화한 백신을 맞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패널토론자로 참가한 김성준 한국화학연구원 팀장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백신 후보를 검증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승인하기 위해선 기본적인 자료가 필요한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알려진 지 불과 3, 4개월밖에 되지 않아 충분한 데이터가 모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치료제에 대해서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성을 더 명확히 알아내고 이를 반영해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분석해본 김 팀장은 “인간 코로나바이러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랑은 감염 경로와 증식 속도, 면역물질 반응 등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메르스 바이러스는 실험실에서 세포에 감염시키면 세포가 2, 3일 안에 죽는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는 1주일 이상 죽지 않았다. 김 팀장은 “이런 바이러스는 B형간염처럼 오래 지속되는 만성 감염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며 “과학적 검증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기존 의약품 가운데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는 성분을 골라내는 ‘약물 재창출’ 연구를 이 같은 바이러스의 특성을 반영해 재설계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지금까지 약물 재창출 연구는 바이러스 감염 후 세포가 죽는 걸 막는 성분을 우선적으로 치료제 후보로 선별했는데, 앞으로는 세포가 죽지 않는 조건에서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성분도 함께 찾아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치료제 후보로 선택할 수 있는 의약품 범위가 더 넓어지게 된다.
김 팀장은 “환자마다 기저질환이나 병의 진행 정도 등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한두 가지 약으로 코로나19를 치료한다는 건 현실에 맞지 않다”며 “가능한 많은 치료제 후보를 확보해 의료진이 선택해서 처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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