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스포츠가 일시 정지 상태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여서 대부분의 나라가 리그 일정을 중단했다. 유일하게 관중 입장을 허용하고 있는 벨라루스를 제외하면, 리그가 진행 중인 나라들은 모두 무관중 상태로 경기를 치르는 중이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리그로 꼽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영국 역시 코로나19의 최대 피해국 중 하나라 현재로선 리그 재개 시기를 예측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6월 중 재개를 목표로 한다지만, 아직 팀 훈련조차 금지된 상황이라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토트넘 소속의 손흥민은 이런 상황을 감안해 오는 20일 제주도 해병대 위탁 훈련소에 입소한다.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특례 대상자가 된 손흥민은, 이곳에서 3주간 훈련을 받은 뒤 5월 8일 퇴소해 영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손흥민의 군사훈련 입소는 영국 현지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영국 내에서 축구인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면서, 묵묵히 병역 의무를 수행하기로 결정한 손흥민의 선택이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영국 매체들은 손흥민이 리그 휴지기에 군사훈련 입소를 택한 것과,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입소 과정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두루 박수를 보내고 있다.
최근 영국 사회에는 코로나19로 인한 고통 분담에 축구계가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다는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 지난달 영국의 한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설문에서 참가자의 92%가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의 급여 삭감을 원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에 힘입어, 이달 초 영국 정부 브리핑에서 맷 행콕 보건복지부 장관은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은 임금을 자진 삭감하라”고 주장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노동당 소속의 7선 하원의원인 데이비드 래미 역시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이 임금을 자진 삭감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라고 몰아세운 일도 있었다. 축구인들을 바라보는 영국 사회의 최근 인식을 말해 주는 사례다. 선수들이 “임금 삭감은 안 그래도 재벌이 대다수인 구단주들만 배불리는 결과”라며 기금을 모아 NHS(국가의료시스템)에 기부하는 방식을 택했지만 그 액수나 시기 면에서 대중의 큰 호응을 얻는 데에는 실패했다.
게다가 프리미어리그 유명 클럽들인 리버풀과 토트넘이 정부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사실이 알려지자 비난 여론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경기가 열리지 않게 되면서 사실상 할 일이 없어진 직원 수 백 명을 일시해고(furlough) 조치한 뒤 그들의 급여 80%를 정부 자금으로 지급하려 한 것이 공분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나머지 20%를 클럽에서 지급해 결국 해당 직원들이 받는 급여는 기존과 똑같이 유지하는 방안이었지만 그럼에도 비난 여론이 거셌다.
프리미어리그 20개 클럽은 지난 시즌 기준 총 8조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했다.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50억원 안팎이다. 선수 한 명이 1주일에 받는 급료가 평균 6만 4,000 파운드(약 1억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축구 클럽이 이미 부른 배가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팬과 지역 사회를 무시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웠다. 결국 두 클럽은 일시 해고와 정부 지원금 신청을 모두 철회하겠다고 밝혔고, 임금 삭감도 고위 임원진에게만 적용하기로 방침을 바꾼 뒤 공개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두 팀이 기업 경영 차원에서 내린 이 같은 결정은 사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스포츠 클럽을 바라보는 시각은 일반 기업과는 크게 다르다. 축구 클럽은 그 자체의 경영수지가 아니라 커뮤니티, 즉 지역사회를 배려하는 것에서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회적 격리가 길어지면서 우리들 일상에 스포츠가 사라진 지금, 스포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된다.
서형욱 풋볼리스트 대표ㆍ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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