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민의의 대변자를 뽑는 국회의원 선거는 늘 4월에 치러지지만 날짜까지 항상 같지는 않다. 선거법에 ‘임기만료일 50일 전 이후 첫 번째 수요일’로 요일을 기준으로 날짜를 정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번처럼 4월 15일 치러진 총선은 2004년 제17대였다. 공교롭게도 17대 총선은 선거일만 같은 게 아니라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152석) 의석을 확보했다는 점도 닮았다. 당시에도 선거법 개정으로 비례 의석 배정을 위한 정당 별도 투표(1인 2표)가 처음 실시됐다. 그 결과 무려 10석을 얻으며 원내 진출한 민주노동당까지 더하면 범여권의 낙승이었다.
□이번 총선을 코로나 이슈가 좌지우지했듯 당시 여야 승패를 가른 결정적 변수는 노무현 탄핵 사건이었다. 여야 개혁파 의원들이 새로 만든 열린우리당에 힘을 실어주려던 노 대통령의 발언을 중앙선관위가 선거 중립 의무 위반으로 판정하자 이를 빌미로 과거 여당인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손잡고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여론과 한참 동떨어진 것이었고 그 민심이 나타난 것이 17대 총선이었다. 결국 탄핵소추안은 한 달 뒤 헌법재판소에서도 기각된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총선 승리를 동력으로 추진하려던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등의 개혁 입법은 보수 언론의 지원을 받은 한나라당의 결사 반대로 순탄하지 못했다. 국정 갈등이 계속되는 동안 대통령 지지도는 추락했고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이념 성향 간, 계파 간 대립으로 탈당 러시가 이어졌다. 결국 “누가 나와도 한나라당에서 대통령 된다”는 말대로 2007년 대선은 이명박의 압승으로 끝났고 그 여세를 몰아 4개월 뒤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범보수 진영이 180석 이상을 차지했다.
□이번 총선의 여당 승리는 17대 이상이다. 현재로는 그때만큼 눈에 띄는 여당의 분열도, 당청의 갈등도 없다. 하지만 승리에 취해 방심하거나 민심을 잘못 읽었다가는 18대에 그랬던 것처럼 여론이 언제 등 돌릴지 모를 일이다. 민주당이 “승리의 기쁨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이해찬) “무섭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이낙연)는 초심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까에 달렸다. 총선 민심이 타협과 안정인지, 개혁의 완수인지 제대로 읽어내고 소통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승리의 기쁨은 잠시고 숙제만 산더미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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