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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조문을 다녀오며

입력
2020.04.20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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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6주기인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 세월호 추모 공간에서 양 주먹을 꼭 잡은 시민.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6주기인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 세월호 추모 공간에서 양 주먹을 꼭 잡은 시민. 연합뉴스

장례식장에 간다고 하면 아내는 소위 ‘방법’을 만들어 챙겨 보낸다. 비닐 랩에 된장, 고추장, 굵은소금을 담아주는데 조문이 끝나면 집에 들어가기 전에 휴지통에 버려야 한다. 아마도 나쁜 기운을 집에 들이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다지 미신을 따르지 않는 아내인데도 유독 죽음 앞에서는 이렇듯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

며칠 전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비보를 들었다. 코로나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고인도 상주도 가까운 지인인지라 모르는 체 할 수 없었다. 늦은 밤 식장에 도착해보니 조문객은 거의 없이 가족들만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코로나도 문제이거니와 고인의 부친이 상주 역할을 해야 하는 악상인지라 장례식장만 마련하고 조문객은 아예 부르지도 않았단다. 마흔네 살, 많지도 않은 나이이건만 결혼도 못 한 채, 알코올중독, 우울증, 공황장애 등으로 요양원, 정신병원을 수차례 드나들다가 결국 어제 아침 팔순 아버지의 집에서 생을 마감했단다. 세월호 참사 이후 웬만한 죽음에 무감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어차피 고생만 할 텐데 잘 떠났어요. 다만, 한 번도 사람처럼 살아보지 못해 그게 안타깝네요”라는 고인 누나의 말에는 가슴 한 언저리가 서늘해지고 말았다. 어린 시절 순하기만 했다던 그에게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떤 사연이기에 삶이 갑자기 지옥으로 변했을까? 다 큰 아들이 매일매일 알코올로 버텨내는 모습을 한집에서 지켜보다가 기어이 시신까지 수습하게 된 아버지의 심경은 또 어떨까?

정작 고인의 부친은 담담한 듯 보였다. 나를 붙들고는 고인이 생전에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그날 아침에 어떻게 자식의 죽음을 발견했는지, 자조 어린 농담까지 섞어가며 설명도 했다. “나중엔 신경도 쓰지 않았어. 죽든지 말든지. 아, 내가 죽겠는데 어쩌겠나?” 타인의 죽음을 대하듯 담담한 어른의 표정과 말투가 상주 서넛이 자리를 지키는 조문 공간만큼이나 슬퍼 보였다. 문득 상주들에게 이 공간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흘장을 지켜야 하는 건가? 조문객도 부르지 못하는 장례식, 고인의 명예도 상주의 아픔도 보듬어주지 못하는 장례식이 아닌가. 오랜 풍습이라지만 내용은 사라지고 말 그대로 인습만 남은 것이다. 몇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장례식이 있었다. 고인의 시신을 가족이 거부하면서,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먼 친척이 대신 장례식장을 계약하고 사흘장을 치러준 것이다. 다만 상주가 없어 장례기간 내내 상가를 지킨 건 급조한 고인의 액자와 꺼진 촛불뿐이었다. 두 고인 모두 어느 장례보다 추모가 필요하건만.

고인을 위로하지도, 상주를 보듬어주지도 못하는 악상은 또 있다. 그러고 보니 4월 16일, 벌써 6년이다. 세월호를 인양한 것도 4년이 지났건만 우리는 올해도 어김없이 SNS 프로필에 노란 리본을 걸고 추모식장을 찾아 국화를 바쳤다. 우리가 매년 같은 의식을 반복하는 것도 어쩌면 이런 식으로는 추모도 위안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리라.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는 한 세월호는 언제나 텅 빈 장례식장이고 노란 리본은 아내가 만들어준 부질없는 부적에 불과하다. 15일 끝난 총선에서도 세월호는 모욕을 당하고 고인들을 모독한 자들은 여지없이 금배지를 달았다. 우리들의 헛헛한 추모는 이렇게 내년에도 후년에도 이어져야 하는가 보다.

나는 장례식장을 나오며 아내의 ‘방법’을 버리고 매점을 찾았다. 아내는 집에 들어오기 전 뭐든 내 돈을 주고 물건을 구입하라고 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맥주 한 캔을 산 다음 집에 돌아가는 대신 병원의 공원 벤치를 찾았다. 조문을 위해 빼두었던 노란색 리본도 다시 옷깃에 달았다. 찬바람에 늦된 벚꽃 송이가 후두둑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조영학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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