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회사채를 담보로 민간 증권사와 보험사에 직접 대출을 해주기로 했다. 한은이 은행이 아닌 금융사에 대출을 허용하는 것도, 회사채를 담보로 받아주는 것도 처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쇼크로 자금조달 길이 좁아진 금융사들에게 향후 사정이 악화될 것을 대비해 선제적인 ‘안전장치’를 제공한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한은은 16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금융안정특별대출제도’를 신설하기로 했다. 은행은 물론 15개 증권사, 6개 보험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에도 잔존만기 5년 이내 우량등급 회사채(AA- 이상)를 담보로 최장 6개월 이내 대출을 해주겠다는 게 골자다.
대출금리는 비슷한 만기(182일)의 통화안정증권 금리에 0.85%포인트를 가산한 수준으로, 14일 기준 연 1.54% 정도다. 한은은 내달 4일부터 향후 3개월 간 한시적으로 10조원 한도 내에서 대출을 운용하고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기간 연장 및 증액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한은의 이번 조치는 역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파격이다. 앞서 한은은 1997년 외환위기 때 ‘한은법 80조’에 근거해 한국증권금융(2조원)과 신용관리기금(1조원) 등 은행 외 공적 기관에 대출을 해준 적이 있지만 증권사나 종금사 같은 민간 금융사 대상은 아니었다. 한은법 제80조는 금융기관의 자금 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할 경우 비은행 금융기관 등 영리기업에도 대출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출 담보로 회사채를 받아주는 것도 처음이다. 한은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일반기업, 은행, 비은행 금융기관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가능성에 대비한 안전장치인 셈”이라며 도입 배경을 밝혔다.
앞서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의 전개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 불안이 재연될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며 증권사 등에 대한 직접 대출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앞서 무제한 환매조건부채권(RP) 대상 기관을 증권사로 확대하는 등 ‘한국판 양적완화’에 시동을 걸었지만 여전히 금융시장 내 신용경색이 남아있다는 판단에서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달 26일 정례회의에서 RP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비은행 대상기관에 증권사 11곳을 추가했다.
한은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금융시장에서 신용 경계감이 다시 높아졌다”며 “회사채 시장의 불안과 금융기관 자금사정 악화가 재연될 소지가 큰 만큼 비상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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