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군소정당 원내 진출’ 취지… 양당이 위성정당 창당해 무력화
룰 지켰다면 비례 40%만 확보… 총선 후에도 합당 않고 활용 구상
“국민 의사 왜곡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지역주의를 개선하며 다양한 정책과 이념에 기반한 정당의 의회 진출을 촉진하려 한다.” (올해 총선에 첫 적용된 공직선거법 개정안 제안 취지)
4ㆍ15 총선의 결과는 ‘정치 양극화 심화’로 요약된다. 비례대표 47석 중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17석,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19석 등 두 당이 모두 36석(77%)을 독식했다. 결국 양당제는 강화되고 제3지대 정당은 입지가 좁아지며 21대 국회는 극한 대립을 예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거대 정당이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며 진영 세대결을 극대치로 끌어올린 점이 지역구와 비례 의석 독식에 영향을 줬다. 이 과정에서 영호남 쏠림 현상도 재현됐다. 동서 대립구도가 부활했다. 지난해 패스트트랙 사태 등을 겪으며 간신히 통과시킨 선거법 개정안의 도입 취지가 무색한 정도다.
당초 선거법 개정안은 ‘다양한 군소정당의 원내 진입 기회 보장’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양당이 강조한 여러 현실론 탓에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목표가 축소됐다. 비례의석도 75석을 47석으로 대폭 줄이는 등 용두사미 수정이 거듭됐다. 통합당이 비례위성정당 창당 꼼수를 쓰자 민주당마저 같은 꼼수에 팔을 걷고 나서면서 선거법은 누더기가 됐다.
두 당이 나란히 경기의 룰을 지켰더라면 올해 총선에서 각 당이 차지할 비례대표 의석 수는 민주당 6석, 통합당 13석, 정의당 12석, 국민의당 9석, 열린민주당 7석이 된다.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의 정당득표율을 각각 민주당과 통합당 정당득표율로 생각하고, 각 당이 확보한 지역구 의석수를 반영한 추산치다. 즉 모두가 경기의 룰을 지켰더라면 19석(40%)만 확보했을 거대 양당이 법의 빈틈을 파고 들어 77%를 채 간 셈이다.
민주당과 통합당의 의석 확보 경쟁이 진영 간 총력전으로 비화하면서 ‘전략적 분할투표’ 여지도 줄였다. 정의당의 비례대표 정당투표 득표율은 9.67%였지만, 지역구는 사표 방지 심리에 따라 승산 높은 거대 양당 후보를 찍더라도 정당투표는 진보정당을 찍어온 분할투표층이 양당으로 쏠려 손해를 봤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위성정당을 활용하면서 거대 양당은 법의 경계를 보란 듯이 넘나들었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부터 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은 핑크색 점퍼에 기호를 붙였다 뗄 수 있는 스티커를 활용해 꼼수 운동에 나섰고,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은 당명만 빼고 똑같이 생긴 ‘쌍둥이 버스’를 동원해 공동 홍보를 했다.
이런 ‘꼼수 활용사’는 선거 이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민주당과 통합당에서는 당초 합당이 기정사실화되던 위성정당과의 통합 논의를 잠시 중단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장 임명을 앞두고 여야가 기싸움에 돌입할 국면에 대비해 위성정당이 개별 교섭단체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공수처장 추천 위원 7명 중 2명인 야당 몫을 놓고 다시 위성정당을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기득권 거대 양당의 독식 속에 문을 여는 21대 국회에서도 꼼수 경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