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먹구름이 지나가면 우리의 태양이 다시 뜰 겁니다. -세계의 음악인들로부터.”
이 메시지에 이어 아일랜드 민요가 편곡된 팝송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의 선율이 흘러 나왔다. 지난해까지 KBS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이었던 루마니아 출신 지휘자 요엘 레비의 손짓에 맞춰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이탈리아의 첼리스트 엠마누엘 실베스트리(이탈리아) 등이 잔잔한 현악기 반주를 시작했다. 프랑스의 트럼페터 마크 구종은 반주 위에 나즈막하게 울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선율을 올렸다.
이윽고 오보에(다와이트 페리ㆍ미국), 호른(로브 반 데 라ㆍ네덜란드) 등 관악기가 가세하고, 팀파니(매튜 어니스터ㆍ미국)와 피아노(맥킨지 멜라메드ㆍ미국) 기타(라파엘 아귀레ㆍ스페인)까지 힘을 보탰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라고 읊조리듯 고백하는 가사는 맑은 음색의 소프라노 정유나가 맡았다.
이 정도면 큰 공연장을 빌려 공연을 하나 싶지만, 실제 이 무대는 공연장이 아니라 세계지도를 배경으로 디지털 영상 속에서 이뤄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고통 받는 세계인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10개국 소속 연주자 17명이 온라인을 통해 뭉친 것이다. 일종의 ‘랜선 합주’인 셈이다.
코로나19 확산 사태는 세계 클래식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곳곳의 연주회가 취소됐다. 클래식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고, 코로나19 극복에 힘을 보태기 위해 베를린필하모닉 등 유명 연주 단체들은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공연을 무료 공개했다. 일부 연주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다 자신의 연주 영상을 올리면서 무산된 공연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소속이 전혀 다른 연주자들이 한데 모여 코로나19 극복 의지를 다지는 응원의 연주를 펼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이디어는 3월말쯤 제기됐다. 우선 지휘자 요엘 레비가 지휘를 녹화한 뒤 그 영상을 다른 연주자들에게 공유했다. 세계 각국의 오케스트라 수석급 연주자들이 이 지휘에 맞춰 악기를 연주하면서 녹화했다. 최종 연주는 이 연주 녹화들을 한데 다 합친 것이다.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특정 단체나 기관이 주도한 게 아니라 연주자들 사이에서 ‘이렇게 해보면 어때?’라는 말이 오가다 자연스럽게 성사된 공연이었다. 연주자들 국적이 다양하다 보니 시차를 감안해 소통하고 연주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걸렸다. 작정을 하고 전문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연주가 아니다 보니, 연주자들이 보낸 영상 속 연주 음질 또한 다 달랐다. 일일이 이를 균질하게 보정해야 했다.
곡을 클래식 버전으로 편곡하는 데는 가천대 학생 임원빈씨가, 영상 편집은 영화음악 작곡가 백승범씨가 맡았다. 클래식 업계 일을 하는 손유리(KBS교향악단)씨, 송성완(예술의전당)씨도 참여했다. 손씨는 “음악인들 모두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에 무척 기쁘게 작업했다”며 “연주자들은 하루 빨리 다시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길 고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편곡, 연주, 영상 제작 등 전 과정은 재능기부로 이뤄졌다.
참여 연주자들도 코로나19의 성공적 극복을 간절히 기원했다. 김봄소리는 “위기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과 봉사자들, 바이러스에 지친 사람들에게 음악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콩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인 징왕도 “‘당장 성공하지 못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나라’는 어머니 격언을 새삼 되새기고 있다”면서 “우리가 사랑으로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여 연주자들 모두 “이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우리 모두 꼭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KBS교향악단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지휘자 요엘 레비는 “외국에서는 코로나19를 잘 이겨내고 있는 한국인을 무척 부러워하고, 또 따라 배우고 있다”며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나타냈다.
연주 영상은 17일부터 유튜브(https://youtu.be/iElMHb3HL6M), SNS 등을 통해 공개된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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