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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 코로나 속 총선에도 “소중한 한 표 행사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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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 코로나 속 총선에도 “소중한 한 표 행사해야죠”

입력
2020.04.15 18:42
수정
2020.04.15 22:0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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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소 문 열자마자 몰려든 유권자들로 북적

자가격리자도 오후 6시 이후 투표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된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전초등학교 체육관 내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멀찍이 떨어져 투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서재훈 기자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된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전초등학교 체육관 내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멀찍이 떨어져 투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서재훈 기자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개시된 15일 오전 6시부터 전국 1만4,330개 투표소 앞에는 대기 줄이 늘어졌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은 1m 이상 거리를 두고 차분히 투표 순서를 기다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치러진 사상 초유의 총선이지만 민주시민의 권리를 행사하려는 유권자들의 발길은 하루 종일 투표소로 향했다.

◇고교생부터 116세 노인까지 투표 행렬

광주 최고령 유권자인 박명순(116) 할머니는 오전 9시 30분쯤 북구 문흥1동 행정복지센터 투표소를 찾아 투표를 했다. 한일의정서(1904년)가 체결되기 한해 전에 태어난 박 할머니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치러진 모든 선거에 참여했다. 이날도 지팡이에 의지해 신분 확인과 기표, 투표용지 제출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냈다. 박 할머니는 “다음 대통령 선거 때도 꼭 참여하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충북 옥천군 이용금(116) 할머니도 휠체어를 타고 팔음산 마을회관에서 투표를 하는 등 고령의 노인들은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자신들의 한 표를 행사했다. 생애 처음 투표권을 갖게 된 고등학교 3학년생들도 상기된 눈빛으로 삼삼오오 지역의 투표소로 몰려들었다.

신종 코로나 감염을 우려한 유권자는 많지 않았다.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제3투표소에서 첫 투표를 한 이정일(21)씨는 “사람이 많은 곳에 나가는 게 걱정이 되긴 했지만 투표소가 잘 관리돼 오히려 놀랐다”고 말했다.

다만 코로나로 인해 선거 인증 방식은 달라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손등 인증’ 대신 투표확인증이나 미리 준비한 메모지에 기표 도장을 찍는 인증이 이어졌다. 감염 우려로 어린 자녀들과 함께 투표소를 방문하는 이들도 사라졌다.

◇내 한 표는 소중하니까

물리적인 난관도 투표 의지를 막지 못했다. ‘내륙의 섬’으로 불리는 강원 화천군 화천읍 동촌1리 주민들은 20여 분간 배를 타고 풍산초등학교 투표소를 찾았다. 1940년대 화천댐 건설로 육로가 없어진 이 마을에는 14가구 20여 명이 거주하는데, 사전투표자를 제외한 4명이 이날 투표를 했다. 1980년 대청댐 건설로 고립된 충북 옥천군 옥천읍 오대리 주민 3명도 배를 이용해 죽향초등학교에서 투표를 했다.

비무장지대(DMZ) 내 유일한 마을인 경기 파주시 군내면 대성동마을 주민들은 일손이 부족한 영농철인데도 마을에서 7㎞ 가량 떨어진 백연리 마을회관에서 투표에 참여했다. 김동구 대성동 마을 이장은 “하루빨리 코로나를 이겨내 국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고, 남북관계도 더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한 표를 행사했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 관련 자가격리 중인 유권자도 일반 유권자가 투표를 마친 오후 6시 이후 투표를 했다. 이들은 대중교통 이용이 금지돼 도보나 자신의 차량으로 투표소까지 이동했다. 자가격리자는 기침과 발열 등 증상이 없고 사전에 방역 당국에 신청한 경우에만 투표가 가능했다. 5만9,918명 중 투표를 하겠다고 신청한 이는 1만3,642명(22.76%)이다.

◇돌발 사고도 속출

전국 투표소에서는 방역 수칙을 따르지 않는 유권자들로 인한 크고 작은 소동도 이어졌다. 서울 성북구 종암동의 한 투표소에선 만취한 유권자가 마스크를 쓰지 않고 투표하겠다며 소란을 피워 경찰에 연행됐다. 이 남성은 해당 지역구 주민이 아닌데도 “투표를 왜 못하게 하느냐”고 소리를 지르며 투표를 강행하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 하비에르국제학교에 설치된 평창동 제3투표소에는 비닐 장갑을 두고 유권자와 선관위 직원간 언쟁이 벌어졌다. 이 유권자는 환경 문제 때문에 현장에서 나눠주는 비닐장갑을 사용하지 않고 집에서 가져온 여타 장갑을 쓰겠다고 주장했다.

투표용지를 훼손하거나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사례도 빈발했다. 울산 남구의 모 투표소에선 유권자 한 명이 “잘못 찍었다”며 투표용지 교체를 요구하다 거부당하자 용지를 찢은 뒤 투표소에서 나갔다. 경북 포항시 남구 청림초등학교 투표소에서도 같은 이유로 투표용지를 찢어버린 유권자가 나왔다. 공직선거법 244조는 투표용지를 훼손하면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인천의 한 투표소에서는 신분 확인이 가능한 체크카드형 학생증을 지참한 만 18세 유권자를 투표권이 없다며 두 차례 돌려 보내기도 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관리자 착오”라고 해명했다. 부산 사하구 신평1동 제2투표소에서는 70대 여성 A씨가 “투표를 안 했는데 한 것으로 돼 있다”며 대리투표가 의심된다고 경찰에 신고했으나, 조사 결과 비슷한 이름의 유권자가 실수로 인명부에 서명을 한 것으로 확인돼 사건이 종결되기도 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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