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자금 조달 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조성된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가 여신전문금융회사채권(여전채)를 처음으로 매입하고 나섰지만, 당국과 여전업계 간의 ‘금리 갈등’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시장금리보다 높은 금리(싼 가격)이 적용돼 채안펀드 조성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당장 현금이 급한 처지에 배부른 소리”라는 냉랭한 시각도 만만치 않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채안펀드는 전날 200억원 규모의 메리츠캐피탈 3년 만기 여전채를 매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여전사들의 돈줄이 말라버린 가운데, 채안펀드의 첫 여전채 입찰이다.
여전사는 은행과 다르게 수신기능(예금 등)이 없어 사업 자금 대부분을 회사채를 통해 끌어오는데, 코로나19로 여전채 수요가 확 쪼그라들어 3월 여전채 순발행액은 1월에 비해 89.1% 감소했다. 여전채 발행이 중단되면 자영업자 등 저신용자들의 대출창구인 신용카드사나 캐피탈사들이 영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금융당국은 채안펀드를 조성하며 여전채를 투자 대상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입찰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졌다. 여전업계는 시장 평균 금리로 불리는 ‘민간채권평가회사 평균 고시금리(민평금리)’에 채권을 발행해달라고 요구했다. 통상 채권을 발행할 때는 민평금리에 발행 회사의 신용도를 반영해 스프레드(금리차)를 얹는다. 신용도가 낮으면 시장에선 위험하다고 판단, 스프레드가 커져 발행금리가 높아진다. 여전업계는 이런 위험 평가를 제거하고 시장 금리보다 싸게 발행해달라고 한 셈이다.
반면 금융당국은 “여전사가 제시한 원리금, 상환유예 목표금액 등을 고려해 시장 금리보다 비싸게 살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결과 메리츠캐피탈은 메리츠금융지주의 지급보증을 받아 기존 A+등급에서 AA- 등급으로 평가 받아, 민평금리 대비 6bp%(1bp=0.01%포인트) 높은 연 1.809%로 매입 결정됐다.
여전업계에선 첫 매입이 이뤄진 점에는 안도하면서도 향후 금리 압박에 시달릴 수 있게 됐다고 불만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전업계 관계자는 “여전사들의 어려움을 고려해 금리를 조금이라도 더 싸게 결정해줘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사들의 이런 입장에 대해 시장 논리를 무시하고 싼 금리에 자금을 조달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돈이 급하게 필요한 만큼 금리를 비싸게 내어주는 게 시장 논리”라며 “정말 당장 현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장 싼 금리인 민평금리를 요구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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