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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코로나 경제 처방 두고 ‘남북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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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코로나 경제 처방 두고 ‘남북 갈등’

입력
2020.04.14 20: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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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장관이 9일 유럽 재무장관(유로그룹) 화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유로그룹 회의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대규모 통행 제한을 내린 가운데 화상회의로 진행됐다. 파리=AFP 연합뉴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장관이 9일 유럽 재무장관(유로그룹) 화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유로그룹 회의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대규모 통행 제한을 내린 가운데 화상회의로 진행됐다. 파리=AFP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쑥대밭이 된 유럽이 코로나19에 맞설 경제 처방을 둘러싸고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부 국가들은 각국이 재원을 공동 부담하면서도 의무 조건이 없는 구제금융을 원하는 반면, 독일 등 북부 국가는 이런 남부의 요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부유한 북부유럽과 상대적으로 가난한 남부유럽 사이의 이른바 ‘남북 갈등’이 2012년 유럽 재정위기 때에 이어 또 다시 유럽을 뒤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부채비율 높은 남부, ‘공동 채권’ 원했지만

유럽연합(EU)의 재무장관 모임인 ‘유로그룹’은 지난 9일 코로나19 충격에 맞서는 EU 차원의 공동 대응책에 합의했다. 대응책의 총 규모는 최소 5,400억유로(약 540조원)로 추산된다. 중소기업 대출 지원과 실업자 지원 등이 포함됐지만, 핵심은 유럽안정성기구(ESM)를 통해 코로나19 관련 보건 지출에 2019년 각국 총생산(GDP)의 2%까지를 지원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외신에서는 이번 합의가 미래의 ‘남북 대립’을 일시 유예한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독일, 네덜란드 등 북부가 엄격한 조건이 붙는 ESM을 지원 통로로 내세우는 반면,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부는 유럽 국가들이 공동으로 부채를 짊어지는 일명 ‘코로나채권’ 발행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 각국은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지출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일부 국가의 높은 정부부채 비율이다. 유럽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이탈리아는 GDP 대비 정부부채가 135%에 이르고, 포르투갈(122%) 벨기에(100%) 프랑스(98%) 스페인(97%) 등도 부채비율이 높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 등은 유로존 국가들이 채무 부담을 나눠 지는 코로나채권을 해법으로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긴축 성향이 강한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북부 국가는 이를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탈리아 등의 부채를 독일 등이 짊어질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이들은 엄격한 지원 요건을 갖추고 구조조정 간섭을 받아야 하는 기존 ESM 제도를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국제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부채비율이 높은 국가들은 ESM의 지원 요건에 미달한다고 분석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유럽의 코로나19 경제 충격 대응. 그래픽=강준구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유럽의 코로나19 경제 충격 대응. 그래픽=강준구 기자

◇코로나19 위기에도 유럽 재정 논쟁은 ‘진행형’

유로그룹 회의는 지난주 내 평행선을 달리면서 합의 실패를 거듭했다. 재무장관들은 결국 구제금융을 위해 ESM을 이용하되 보건 관련 지출에만 조건을 따지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

공동채권 발행 여부는 사실상 각국 지도자가 참석하는 EU 이사회에 달려 있다. EU 공동 예산안은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9일까지도 “공동채권 발행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코로나19로 위기에 직면한 현재 상황에서 북부가 더 유연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비토르 콘스탄치오 전 유럽중앙은행(ECB) 부총재는 14일 “과거 유럽 재정위기 때와 달리 지금은 시장금리도 낮고, ESM의 엄격한 규정이 오히려 ‘낙인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유럽 차원의 장기 채권을 발행하는 편이 더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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