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날이 밝았다. 14일의 선거운동 기간이 끝나고 이제는 유권자의 선택만 남았다. 이번 총선을 한마디로 평가하면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사태에 가려 뚜렷한 정치적 쟁점과 유세 열기 없이 치러진 깜깜이 선거였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정권 중간평가 성격이었던 선거 판도 자체를 바꿔놓았다. 당초에는 야당의 추격 속도가 무서웠다. 보수 통합이 성사되면서 정부의 경제 실정이 선거 이슈로 부상하면 볼 만한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한때 세계에서 확진자가 두 번째로 많았던 우리나라가 코로나 대응에서 세계의 모범국으로 부상하면서 국난 극복을 위해 정부ㆍ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프레임이 힘을 얻었다. 반면 초당적 협력이나 대안 제시 없이 정부의 실수를 정권 탈환의 기회로만 여겼던 야당의 정권심판론은 설 자리를 잃었다.
코로나에 묻혀 이슈와 정책 대결이 사라진 자리에는 소모적인 정쟁만 기승을 부렸다. 미래통합당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조국 살리기냐 경제 살리기냐’를 구호로 내걸었다. 그러자 ‘조국 수호당’을 자임하는 비례위성정당 열린민주당이 여당을 대신해 ‘윤석열 때리기’에 나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표가 직접 나서 통합당을 ‘토착왜구’라 부르며 해묵은 ‘친일 대 반일’ 프레임을 꺼냈다.
이번 총선은 기형적인 비례위성정당 체제로도 기억될 것이다. 거대 양당의 이분법적 진영 논리로 선거판이 재편되면서 정치 혐오와 냉소가 어느 때보다 깊었다. 35개 정당이 등록해 48.1cm에 달하는 비례대표 투표 용지에서 어느 당을 골라야 하는지, 인물난 속에 지역구 후보는 누구를 찍어야 하는지 선택의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투표 포기를 고민하는 부동층 규모가 아직도 상당하다.
이번 총선이 이전보다 후퇴한 나쁜 선거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4년을 더 후회하지 않으려면 유권자가 어느 한쪽에는 정신 차리라고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사보이아 공국의 철학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말을 남겼다. 코로나 이후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선거다. 깜깜이 선거지만 차악으로 최악을 물리친다는 생각으로라도 반드시 투표장에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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