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5 총선이 끝났다. 결과를 떠나서 이번 선거 과정을 비판적으로 본다면 자기중심적인 무원칙이 압도한 선거였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선거법은 원래 양당제 폐해를 줄이고 다양한 소수정당의 진출을 늘리겠다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됐다. 무리수까지 두면서 추진됐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깜깜이’ 선거가 되고 말았다. 편법 만능주의가 통하고 ‘꼼수’ 정당이 큰 영향력을 갖고, 엉터리 공약들이 양산되었으나 통제할 길이 없었다. 그 와중에 후안무치 중증 환자 같은 사람들이 대거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정치 지도자의 공공성이 사라진 선거판은 두 가지의 뻔뻔함이 지배했다. ‘내 밥그릇이 최고의 가치’라는 ‘밥그르니즘’과 ‘성공은 얼굴의 두께에 비례한다’는 ‘후안(厚顔)파 성공의 법칙’이 그것이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이제 21대 국회를 구성할 새로운 승자들이 결정됐다. 성공한 자의 과거는 비참할수록 아름답고, 성장의 진통은 괴로울수록 빛난다는 위로를 믿고 싶다. 혼란스러운 과정을 뒤로 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21대 국회에서는 기성의 권력자의 속성을 답습하지 말고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만난 여성리더십에서 배울 점을 찾아보기 바란다.
새로운 리더십의 모델은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처하는 국민들 사이에서 나왔다.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해서 수많은 국민들이 절제와 봉사 연대를 통해서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의 공습을 막아내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대구에서 먼저 집단감염 참사가 시작되자 전국의 의료인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달려가 의료 인력 부족을 메웠다. 볼 위에 1회용 반창고를 잔뜩 붙이고 해맑게 웃는 간호사들의 얼굴, 어벤저스를 방불케 하는 하얀 방호복 차람의 검사 요원들의 모습은 큰 감동을 주었다. 마스크 공급도 잠시 혼란은 있었으나 긴 줄서기를 하면서도 규칙을 잘 지켜 주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도 자율적으로 잘 실천되었다. 전체주의적인 강압이 아니라 자율과 협력으로 감염을 다스려 가는 대한민국 스타일의 대처법은 연대와 자율로 훈련된 성숙한 시민들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미국 WSJ에서 리더십 전문가 샘 워커는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실력 있는 관료들의 여성 리더십이 부각됐다면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55)을 침착함과 겸손함으로 신뢰받은 리더로 조명했다. ‘일관되고 솔직한 언급, 정보에 근거한 분석, 인내심 있는 침착함’이 위기 국면에서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믿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이다.
WSJ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사람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불렸다고 설명했지만, 정 본부장은 말없이 스스로 봉사하고 협조한 의료인과 국민들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공을 돌렸다.
늘 같은 시간에 노란 유니폼을 입고 쇼트커트, 안경 차림으로 등장해서 맑은 목소리로 차분하고 간결하게 상황보고를 하는 정 본부장의 모습은 안정되고 성실해 보였다. 국민들은 이 차분하고 겸손한 여성 전문가 관료에게 의지해 불안의 터널을 통과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를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 강자들의 힘이 아니었다. 겸손과 헌신, 배려와 이타성을 덕목으로 하는 여성 리더십이었다.
외신에서도 코로나19 위기를 잘 관리한 국가의 지도자들 중 여성이 많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여성 지도자들이 남성들보다 건강 문제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전염병 대처를 더 잘한다는 분석이다. 한국 정부의 성공적인 코로나 대처를 국민을 아이처럼 보살피는 ‘모성적 대응’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위기를 극복하는 진정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이번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잘 보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코로나19가 남긴 큰 상처를 극복하기까지는 예측할 수 없이 긴 시간과 강한 인내심, 헌신이 필요하다. 21대 국회가 성공하려면 기성 권력이 아닌 여성 리더십에서 새로운 힘을 배워 와야 한다.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