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중국 상하이 푸둥공항. 이탈리아ㆍ스페인ㆍ우크라이나ㆍ이란ㆍ세르비아 등에서 온 화물기들이 잇따라 착륙하자 공항 직원들이 마스크와 방호복 등 방역물자를 싣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이탈리아 알리탈리아사의 보잉777-300ER 항공기는 이날이 벌써 3번째 중국행이었다.
공항 밖엔 마치 에어쇼라도 열린 듯 인파가 몰렸다. 이들 사진 애호가들은 평소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외관의 각국 화물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공항 주변을 바삐 오가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전 세계 화물기가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방역ㆍ의료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세계 각국이 앞다퉈 ‘큰 손’ 중국을 찾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화물전용기 173대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여객기를 개조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사정이 급한 이들 나라들은 직접 화물기를 중국으로 보내고 있다. 중국 해관은 14일 “이달 1~12일 수출한 방역ㆍ의료물자가 165억6,000만위안(약 2조8,150억원)에 달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대국의 면모를 보여줬다”고 밝혔다.
각국의 화물기 중 단연 이목을 끈 건 ‘므리야(꿈)’라는 애칭을 가진 세계 최대 화물기 AN-225였다. 전 세계 1대뿐인 우크라이나 국적의 이 화물기는 적재량이 보잉787의 10배나 된다. 구소련 시절 우주선 이륙용으로 제작됐다가 2001년 민간 화물용으로 개조됐지만 너무 커서 지난 2년간 운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폭발적인 방역ㆍ의료물자 수요와 맞물려 빛을 발하고 있다. 중국은 전날 톈진공항에 도착한 AN-225에 마스크 700만개와 방호복 수십만개를 실어 폴란드로 보냈다. 독일도 조만간 이 항공기를 임차해 중국에 보낼 예정이다.
러시아의 AN-124와 알제리의 IL-76, 이라크의 C-130, 쿠웨이트의 C-17 등 각국의 군용 수송기도 광저우와 상하이로 급파돼 마스크와 인공호흡기 등을 실어 나르고 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코로나19 방역도 전투”라며 “방역ㆍ의료물자가 부족한 각국이 높은 생산 능력을 갖춘 중국으로 화물기와 군용기를 보내는 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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